16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의 ‘의대 교육 점검 청문회’에서 교육부가 의대 정원 배정위원회 회의 자료를 폐기했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늘어나는 의대 정원 2000명은 3월 세 차례 열린 배정위를 통해 지역 의대 40곳에 배정됐다. 그런데 교육부는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고, 회의 참고 자료와 회의 내용을 수기한 수첩도 모두 폐기했다고 했다. 이날 교육부는 1∼3차 회의 결과를 각각 4쪽씩 요약한 자료만 국회에 제출했다.
의대 증원처럼 사회적으로 파장이 크고 중차대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까 봐 일절 자료를 남기지 않았다는 교육부의 설명은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논란이 예상되는 정책일수록 회의록과 회의 자료를 남겼어야 이치에 맞지 않나. 교육부는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지 한 달 만인 3월 15∼18일 배정위를 열었다. 5시간 30분이 소요된 단 세 차례 회의에서 1000쪽에 달하는 의대 증원 신청서를 검토하고 정원 배정을 확정지었다. 합리적인 기준으로 의대 정원이 배정됐다면 ‘깜깜이 심사’를 하고 회의 자료까지 폐기할 이유가 없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혹시 자료가 유출돼 갈등을 더 촉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무진의 우려가 컸다”고 했다. 사실상 합리적인 배정 논의가 없었음을 자인한 셈 아닌가. 더욱이 의대 증원은 이해 관계가 첨예해 과거 여러 차례 철회를 반복했던 정책이다. 이런 민감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실무진이 회의록 작성을 하기는커녕 손으로 기록한 수첩까지 파쇄했다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뭔가를 감추려한 것 아닌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의사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의대 증원이라는 정책적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회의록조차 남기길 꺼리며 밀실에서 의대 증원 배정까지 밀어붙인 결과는 6개월이 넘도록 이어지는 의정 갈등과 의료 파행이다. 그 여파로 필수의료, 지역의료부터 무너지면서 의대 증원의 정당성과 필요성까지 흔들리는 상황이 초래됐다. 갑작스러운 숫자인 의대 증원 2000명이 어떻게 결정되고 배정됐는지, 그 비합리적인 과정을 추궁당할까 봐 회의 자료 폐기를 지시한 것은 아닌지 반드시 진상을 밝히고 응당 책임도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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