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중독 80%는 미생물이 원인
종류 많고 계속 진화하는 특성
치료-예방법 연구하기 어려워
식품 섭취 전 오염 확인 도와줄 ‘박테리오파지’ 활용 방법 주목
이달 8일 질병관리청이 전국 200병상 이상 병원급 의료기관 210곳을 대상으로 세균성 장관감염증 11종을 표본 감시한 결과 7월 넷째 주(7월 21∼27일) 장관감염증 신고 환자 수가 502명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최근 5년 새 가장 많은 것입니다.
장관감염증은 병원성 세균에 오염된 물이나 음식을 섭취해 설사, 복통, 구토 등의 증상을 보이는 질환입니다. 질병관리청은 “여름철을 맞아 식중독이 증가하고 있으니 예방수칙을 잘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죠. 실제로 올여름에는 집단 식중독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달 초 전북 남원시 초중고교 24곳에서 학생과 교직원 1032명이 식중독 증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중순에는 경기 김포시의 한 고교에서 학생과 교직원 90명이, 광주의 한 초교에서 학생 20여 명이 설사와 구토 등 식중독 의심 증상을 보였죠. 식중독은 어떤 질병이기에 의학이 발달했음에도 극복하기 어려운 걸까요.
●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
식중독은 음식을 먹은 후 몸속에 해로운 물질이 생기면서 발생하는 병입니다. 흔히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눈에 안 보이는 미생물이 음식에 섞여 있을 때 걸리는 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이나 동식물에게 원래 있는 독을 섭취해 설사, 복통,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도 식중독에 속합니다.
식중독에 걸리면 구토와 설사를 하고, 심한 경우 고열에 시달리거나 탈수 증세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2020년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연간 약 6억 건의 식중독 사고가 발생하고 이 중 약 42만 명이 사망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치사율이 높지 않아 가볍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의료 서비스가 충분히 보급되지 않은 나라에선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무서운 병으로 여겨집니다.
식중독을 막기 어려운 이유는 식중독을 일으키는 요인이 너무 많고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이민석 고려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원인이 밝혀진 식중독 사고의 80% 이상이 미생물 때문에 발생한다”면서도 “미생물은 세균과 바이러스 등 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생물을 말하는데 그 종류가 셀 수 없이 많고 저마다 독성을 일으키는 방식이 달라 치료 및 예방법을 연구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미생물은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적응하고 진화하기 때문에 치료법을 찾았더라도 어느 순간 약이 안 듣게 될 수도 있습니다.
● 기후 변화로 식중독 위험도 증가
현재 식중독 예방 및 치료 방법으로 가장 주목받는 기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민식 연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적정 온도로 가열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미생물 대부분은 74도 이상으로 1분 이상 가열하면 사라집니다. 또 흐르는 물에 비누로 손을 잘 씻는 것만으로도 99% 이상의 세균을 없앨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엔데믹으로 기본적인 방역 수칙도 잘 지키지 않게 되면서 식중독이 늘어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물론 모든 음식을 높은 온도로 가열해서 먹기는 어렵습니다. 샐러드를 끓여서 먹을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열을 이용하지 않고 식품의 안전성을 높이는 방법이 많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가스실에 상추를 넣었다가 꺼내거나 발광다이오드(LED), X선 등 고에너지선을 활용해 미생물을 죽이는 물리적 처리법이 대표적입니다. 화학적 처리법으로는 세균만 가진 특징을 이용해 식중독균을 공격하는 ‘항생물질’ 활용 방안이 있습니다. 하지만 항생물질이나 항생제에 견딜 수 있도록 진화한 세균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식중독의 위험은 여전한 상황입니다.
또 식중독을 일으키는 원인 중에는 동식물에서 나온 화학물질도 있는데, 기후가 바뀌는 탓에 원래 우리나라에 안 살던 식물이나 바다 생물이 늘었습니다. 이 때문에 새로운 유형의 식중독 사고가 생길 가능성도 높아졌습니다. 또 미생물은 기본적으로 따뜻한 환경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지구 기온이 높아지면서 예전보다 세균 증식이 활발해지기도 했습니다. 1958∼2011년 전 세계 바다의 해수 온도와 비브리오균 농도를 비교한 이탈리아 제노바대 미생물학과 루이지 베출리 교수에 따르면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는 시점과 비브리오균이 늘어나는 시점이 거의 일치했다고 합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수산물 섭취량이 많은 우리나라 역시 ‘비브리오 예측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마음 놓고 음식을 먹기 위한 노력
우리가 먹는 식품은 대부분 엄격한 위생 관리 기준에 따라 정기 검사가 이뤄집니다. 다만 매일 식재료가 바뀌고 조리법도 달라지는 단체 급식소의 경우에는 항상 같은 환경에서 같은 재료로 식품을 만드는 자동화 공장보다 관리가 훨씬 까다롭습니다.
먹기 전 식품이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최소 4일 이상 키워야 어떤 균인지 확인할 수 있어 쉽지는 않습니다. 또 세균이 만드는 물질을 감지해 세균이 있는지 확인하는 ‘신속 검출법’이 있긴 하지만 직접 키워 확인하는 것보다 정확하지 않다 보니 자칫 멀쩡한 음식을 전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주목받는 기술 중에는 박테리오파지(파지)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파지는 살아있는 세균을 숙주로 삼는데, 숙주 세포 안에서 수십∼수백 배로 늘어난 다음 세균을 파괴하며 밖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은 2006년 파지를 식품첨가물로 허가해 지금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직 식품에 파지를 쓰는 게 허가되지 않았지만 가축 사료에는 파지를 섞을 수 있다”며 “언젠가는 사람이 먹는 식품에도 파지를 활용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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