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재송부를 국회에 요청한 뒤 다음 날 임명을 강행했다. 눈에 띄는 점은 재송부 기한이 이날 단 하루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인사청문회법상 국회가 인사청문보고서를 송부하지 못한 경우 대통령은 10일 이내의 범위에서 기간을 정해 국회에 송부를 요청할 수 있다.
야당이 청문보고서 채택을 반대해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인사청문보고서 송부를 요청하는 경우 여야가 충분히 의견을 조율할 시간을 주기 위해 시한을 최소 2, 3일가량 주는 게 관행이었다. 윤 대통령도 임기 초인 2022년 7월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을 임명할 당시엔 7일 동안 기한을 준 적도 있고 최소 2, 3일의 기한을 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 임명 당시에 이어 이 위원장 임명 때 재송부 기한을 당일로 한 것이다. 어차피 야당이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상황 인식과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안 의결을 신속하게 처리하려는 여권의 속내가 반영됐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은 없다는 여야의 ‘강 대 강’ 대치를 보여주는 단면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이 16일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임명안을 재가하면서 윤석열 정부 들어 국회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장관급도 26명으로 늘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장관급 인사 34명을 야당 동의 없이 임명을 강행했다. 취임 2년 3개월 같은 기간을 비교해도 문재인 정부 시절 23명으로 현 정부가 더 많다.
그렇다 보니 후보자의 능력이나 도덕성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지를 따지고 대통령의 인사권을 국회가 견제하도록 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무력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이 어차피 임명을 강행하는데 인사청문회를 왜 하냐는 것이다.
인사청문회가 실질적 검증대 역할은 못 하고 신상 털기와 망신 주기 등으로 끝나는 것도 문제다. 이 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은 초유의 ‘3일 청문회’를 진행하며 결정타 없이 대전MBC 사장 시절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흠집 내기에 바빴고, 여당은 “MBC 등 방송 개혁의 적임자”라며 엄호하는 데 급급했다. 유 장관 청문회에선 야당이 장남의 미국 체류 시절 행적을 문제 삼으면서 아들의 질병 이력이 노출되기도 했다. 유 장관의 큰 흠결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지만 야당은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했다. 정책과 능력 검증 위주로 인사청문회 제도를 개선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여야 대치 속에 논의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야당의 임명 동의를 얻어야 하는 자리는 아예 인사를 못 하는 형국이다. 4·10총선 패배 이후 사의를 표명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유임됐다. 국회 본회의 표결이 필요하지만 여야가 대치하는 상황에서 192석을 차지한 야권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 중에 하나였다.
꽉 막힌 여야 관계를 풀기 위한 키는 결국 윤 대통령이 쥐고 있다. 야당과의 대화 속에 야당이 납득할 만한 인사를 단행하는 게 먼저일 것이다. 총선 직후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각각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을 감안하면 윤 대통령도 협치에 대한 의지가 없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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