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정원이 늘어난 32개 지방 의대 교수 충원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기존의 교수들이 줄줄이 그만두면서 지역의료가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로 업무량이 폭증해 탈진한 데다 정원이 크게 확대된 지방 의대에서는 제자를 제대로 길러내기 어렵다고 보고 빠져나가는 것이다. 사직한 교수들 중 상당수가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옮겨가고 있어 지방의료 살리기라는 취지와는 달리 의대 증원으로 지역 간 의료 격차가 더욱 커질까 우려된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10일까지 전국 40개 의대 소속 병원 88곳에서 전문의 교수 1451명이 사표를 냈고 이 중 255명이 병원을 떠났다. 특히 지방대 교수 이탈이 심각하다. 부산대병원의 경우 교수 19명이 사직해 다음 달부터는 심근경색 환자도 못 받는다고 한다. 강원대병원은 내과 전문의들이 그만둬 산부인과를 비롯한 다른 진료과와의 협진이 차질을 빚고 있다. 충북대병원과 세종충남대병원에 이어 경기 아주대병원도 응급실 운영 중단 위기에 몰리면서 응급실 연쇄 파행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지방 의대의 교수난은 예전부터 심각한 수준이어서 지역의료 수가를 대폭 인상하고 정주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수가 조정이라는 어려운 과제는 외면해 온 정부가 의사 수를 대폭 늘리면 지역 의사난도 절로 해소된다는 이른바 ‘낙수효과’ 운운하다 사명감으로 버텨온 지역 의사들마저 모멸감에 등돌리게 만들었다. 의대 증원에 따른 정부의 예산 집행이 지연되면서 의대 인증 평가에서 탈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그러니 기회 있을 때 교육과 진료 여건이 나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당장은 추석 연휴를 앞둔 전국 대형병원의 응급실 대란부터 막아야 한다. 정부는 22일에야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료를 인상하는 대책을 내놓았는데 지금 응급실은 의사 이탈에 코로나 유행까지 겹쳐 굼뜬 소극 행정으론 소생이 불가능한 말 그대로 응급 상황이다. 정부가 거듭 강조해온 ‘국방에 버금가는 의료 예산 지원’도 말만 하고 있을 때가 한참 지났다. 교수들이 떠나고 지역의료가 붕괴되면 교육도 수련도 불가능한데 의대 정원 늘려봐야 무슨 소용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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