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화성시 아리셀 배터리공장 화재는 사측이 군납 과정에서 비리가 적발돼 납품이 늦어지자 무리하게 공장을 가동하다 발생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방위사업청과 리튬전지 납품 계약을 맺은 아리셀은 품질 검사용 시료를 자신들이 별도 제작한 수검용 시료로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검사를 통과해오다 올 4월 꼬리가 잡혔다. 그로 인해 품질 미달 판정을 받고 제품을 새로 생산하면서 납기를 맞추기 위해 미숙련공을 대거 동원해 생산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아리셀은 납품 지연으로 2개월 가까이 하루 70만 원씩 지체보상금이 발생하자 인력업체에서 50여 명을 파견 받아 별다른 교육도 없이 화재 위험이 높은 주요 공정에 투입했다. 이에 따라 불량률이 기존의 3배로 급증했는데도 생산 목표는 평소의 2배인 하루 5000개로 올려 잡고 작업을 강행했다. 불량 전지가 나오면 망치로 때리거나 적당히 용접을 해 납품용으로 분류했다. 특히 리튬전지 재료는 기계 설비를 통한 정밀한 절단이 중요한데 아리셀은 근로자들이 직접 작두로 자르도록 했다고 한다. 사측의 안전 대비가 그 정도로 허술했다.
그러니 발열 우려가 큰 불량 배터리가 속출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공장 관리자들은 처음에는 이런 전지들을 걸러내다가 시간에 쫓기자 이마저 생략해버렸다. 경찰은 부실하게 마감 처리된 전지 절단면이 금속 물질과 접촉하며 발화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참사를 피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화재 이틀 전 불량 전지 1개가 폭발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때라도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지만 사측은 납기를 맞추는 데만 골몰해 결정적 전조 징후를 무시했다. 화재 당시 폭발한 전지들은 1차 폭발했던 전지와 같은 시점에 생산된 것들이었다고 한다.
방위사업청과 34억 원 규모의 납품 계약을 맺었던 아리셀은 납기를 못 맞춰 화재 당일까지 3800여만 원의 지체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애초부터 품질 검사에서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 정직한 기업이었다면 이 같은 납품 지연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아리셀은 이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려고 근로자들을 위험으로 몰아넣어 결국 23명의 고귀한 생명을 희생시켰다. 경영 윤리와 안전을 도외시한 기업이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를 이번 사건을 통해 여실히 보게 된다. 부정은 더 큰 부정을 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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