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붓고 코골이 심할 때 왕도 먹었던 ‘검은 인삼’[이상곤의 실록한의학]〈152〉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26일 12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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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8대 왕인 현종의 재위 기간(1659∼1674)은 예송논쟁으로 시작해 당쟁이 격화된 시기였다. 민생과는 아무 관계 없는 당파 간의 권력투쟁에 ‘경신 대기근’까지 일어나면서 재위 막바지까지 백성의 삶은 지옥 그 자체였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끊임없는 당쟁과 훈구파의 견제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현종은 “오장이 불에 타는 듯해 차라리 죽고 싶다”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이런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일까. 현종은 인후병(咽喉病)을 자주 앓았다. 목이 붓고 열이 나는 증상에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실음증에도 시달렸다.

목은 음식물과 공기가 들락거리는 공간이라 점액이 다른 기관보다 많이 필요하다. 음식물은 점액으로 감싸질 때 쉬이 넘어간다. 호흡도 공기가 폐로 들어갈 때 점액이 있어야 불순물을 거르고 흐름을 매끄럽게 해줄 수 있다. 한의학에서 인후병은 점액의 분비를 조절하는 신장에 문제가 생기거나 스트레스로 간담(간과 쓸개)에 화(火)가 생겨 목구멍의 점액이 증발하면서 일어난다고 봤다. 목구멍이 건조해져 점액이 사라지면 바이러스나 세균을 거르는 기능이 사라져 인후병이나 목에 캑캑거리는 불쾌감을 일으킨다는 것.

현종의 잦은 인후병 발병은 당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간담에 화가 생기면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실제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보면 현종재위 4년, 6년, 9년 등 곳곳에 인후병을 앓았다는 내용이 발견된다. “인후가 붉고 주변이 부어올랐다”거나 “목소리가 나지 않고 통증이 심하다”거나 “말하기 힘들면서 음식을 넘기기 힘든 증상이 나타났다”는 등 증상에 대한 자세한 기술이 보인다.

이런 현종의 인후병에 대한 처방은 그때마다 각각 달랐지만 반드시 등장하는 약물이 있었는데, 바로 현삼(玄蔘)이 그것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검은 인삼’이라는 의미로, 현삼은 색이 검은 만큼 음기(陰氣)의 근원을 북돋워 신장의 달아오른 열을 다스렸다. 현삼은 예전에 인후라 불렸던 목구멍 전체, 특히 목구멍이 부어오르는 편도선이나 코골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 코골이는 잠을 자는 동안 아래턱뼈를 움직이는 근육과 혀의 근육이 이완되어 혀가 후하방으로 밀려나면서 코뒤쪽과 입안 뒤쪽의 공기가 흐르는 공간이 좁아져 입천장인 연구개 쪽을 진동시키면서 발생한다.

흔히 비염으로 인해 코 내부가 부어서 좁아지면 코골이가 더 자주 찾아온다고 알려져 있다. 술을 많이 마시면 코골이가 심해지는데 술이 품고 있는 더운 양기(陽氣)가 코와 인후두에 부종을 일으키기 때문
이다. 특히 어린이의 코골이는 편도나 아데노이드 증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는데, 밤에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해 키가 크지 않는 등 성장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구강호흡으로 비성주의 불능증을 유발하여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또한 숨을 쉬지 못해 발버둥을 치게 되면 여러 가지 신경계 질환의 단초가 될 수 있다.

현대의학에선 염증을 일으킨 편도나 비대해진 아데노이드를 절제하는 수술요법이 대세지만 한의학에선 현종이 처방받은 현삼을 활용한 보존적 요법으로 효험을 보는 경우가 많다. 음액을 보충하고 열을 식히는 현삼의 자음청열(滋陰淸熱)의 효능이 코안이나 목구멍이 부어오르는 만성 인두염 증상이나 만성 코골이의 치료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러고 보면 매일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는 ‘검은 인삼’이라 불리는 현삼이 더 필요한 약재라고도 볼 수도 있겠다.

#검은 인삼#현삼#인후병#편도#염증#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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