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수문장이었던 이운재 전 전북 코치(51)는 선수 시절 ‘거미손’으로 불렸다. 한국 골키퍼로는 가장 많은 A매치 133경기(115실점)에 출전했고. 2008년엔 골키퍼 최초로 리그 최우수선수(MVP)로도 선정됐다.
이 전 코치가 가장 잘했던 건 페널티킥 방어였다. 스스로도 “승부차기에서 진 기억이 별로 없다”고 말할 정도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전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나온 선방이다. 전후반과 연장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이 전 코치는 스페인의 4번째 키커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막아내며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큰 역할을 했다.
골키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그이지만 중학교 시절까지 그는 필드 플레이어였다. 골키퍼로 전향한 건 지구력이 약해서였다. 청주상고(현 청주대성고) 입학 후 골키퍼가 된 그는 유인권 감독으로부터 승부차기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유 감독은 하루에 수십 번씩 페널티킥을 직접 찼다. 골을 먹는 건 괜찮았지만 몸을 날리는 방향이 틀리면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이 전 코치는 페널티킥 방어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세웠다. “중앙을 지키고, 공을 시야에서 놓치지 말고 끝까지 본다”는 것이었다. 이 전 코치는 “승부차기 때 골키퍼에겐 다섯 번의 기회가 있다. 한두 개만 막아도 내가 이기는 게임”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지도하는 어린 선수들에게도 “골키퍼는 골을 막는 게 아니라 먹는 게 일인 포지션”이라고 가르친다. 스트레스를 피하는 이 같은 방식이 그가 마흔 가까이 될 때까지 선수 생활을 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은퇴 후 프로축구 수원과 전북, 한국 23세 이하 대표팀 코치 등을 지낸 그는 요즘 프로축구 K리그2(2부 리그) 경기 해설을 하고 있다. 또 경기도 수원월드컵재단 홍보대사로 일하며 유소년 선수들을 대상으로 골키퍼 클리닉을 열기도 한다. 최근엔 한 축구용품 업체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골키퍼 장갑도 출시했다.
선수 시절 체중 유지에 신경을 많이 썼던 그는 요즘도 최대한 절식하며 틈나는 대로 주변을 걷는다. 선수들을 지도할 때는 한두 시간씩 공도 열심히 차 준다. 또 선수 때부터 해오던 골프도 여전히 즐기고 있다.
그는 축구계에서 알아주는 장타 골퍼다. 드라이버로 마음먹고 때리면 270m를 쉽게 날린다. 베스트 스코어는 몇 해 전 강촌 엘리시안에서 기록한 4언더파 68타다. 그는 골프를 칠 때도 페널티킥을 막을 때와 비슷한 맘으로 임한다고 했다. 이운재는 “실수해도 지나간 건 잊고 다가올 홀을 생각한다”며 “욕심을 내지 않고 순리대로 친다. 지나간 걸 잊어야 정신이 건강해진다”고 했다.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공부를 더 한 뒤 현장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프로나 대학 팀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아카데미 같은 것을 수도 있다. 어디에서든 내가 가진 노하우를 어린 선수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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