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내는 늘 잠이 모자라서 꾸벅거리던 남편의 고달픔과 그리고 현장 2층의 암흑 속에서 숨이 끊어지기까지 남편이 혼자서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 뜨거움을 되뇌면서 쓰러져 울었다.’ ―김훈 ‘소방관의 죽음’ 중(라면을 끓이며·2015년)
6년 전 소설가 김훈의 이 문장으로 짧은 칼럼을 쓴 적이 있다. 1995년 5월 24일 전남 여수 교동 중앙시장에서 16명을 구한 뒤 화마(火魔)에 숨진 여수소방서 소속 고 서형진(당시 29세) 소방사의 사연이다. 장래 희망에 늘 ‘소방수’라고 적었다는 김훈의 소설에는 그래서인지 소방관이 자주 등장한다. 질주하는 소방차와 불길 속으로 달려가는 소방관들의 모습에서 김훈은 국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15년여 전 초년병 기자 시절 소방관을 만날 기회들이 있었다. 한 소방관은 산불을 진압하다 그을린 나뭇가지가 뒷목에 떨어져 화상을 입었다. 그는 공상 처리를 받지 못해 자비를 털어 병원에 다녔다. 다른 소방관은 밀린 수당을 달라는 소송에 동참했다가 구급대로 좌천됐다. 오십을 앞둔 소방관은 스물다섯 기자 앞에서 서럽게 울었다.
22일 부천 호텔 화재 현장에서의 소방 대응을 둘러싸고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낡고 뒤집힌 에어매트, 119 신고 접수 과정에서의 대응 지체, ‘에어매트를 거꾸로 깔았다’는 거짓 소문까지. 에어매트는 공기 주입 호스가 아래쪽에 있어 거꾸로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잘못 찍힌 사진 한 장으로 소방관들이 조롱을 받았다.
부천 현장 소방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도착 당시 이미 호텔은 앞을 분간할 수 없는 검은 연기로 꽉 차 있었다. 골목은 폭이 좁고 주차된 차들 탓에 굴절사다리차를 고정할 공간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에어매트를 폈다. 사용 연한이 11년 지났지만 혹시 모를 추락자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나을 걸로 판단했을 것이다. 소방관이 수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뛰어내리고 매트가 뒤집히고 또 뛰어내리는 상황은 예측 불가능했다.
수사가 시작됐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가려질 것이다. 소방의 대응이 도마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 논쟁의 결과가 신상필벌과 망신 주기는 아니길 바란다. 다음 재난 현장에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여전히 소방관은 열악한 지경에서 근무한다. 초과근무 수당을 받으려면 15년 전처럼 지자체와 싸워야 한다. 소방관 치료비, 간병비는 2009년에 정해진 금액 그대로다. 국립경찰병원은 1949년(1991년 서울 송파로 이전), 국군수도병원은 1951년(1999년 경기 분당으로 이전)에 생겼는데 국립소방병원은 아직 없다. 역대 정부에서 번번이 무산됐다가 2017년 문재인 정부 때 건립이 확정돼 현재 공정 약 30%다. 인력 부족도 여전하다. 2022년 말 기준으로 현장 소방 인력 부족률은 전국 평균 10%, 전남 울산 등은 20%를 넘는다.
부천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소방의 열악한 현실이 개선되길 바란다. 소방관이 낡은 에어매트를 새것으로 교체할 순 없다. 소방관이 스스로 인력을 충원할 순 없다. 이는 소방의 능력과 권한 밖이다. 예산을 배정하고 통과시키는 정부와 국회의 책임이다. 소방관들에게 너무 많은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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