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초중고까지 덮친 딥페이크 성범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27일 23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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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얼굴이 나체에 합성된 ‘딥페이크’ 사진과 함께 공개된 신상 정보를 보고 여성들이 처음 느끼는 감정은 공포다. 공포는 나의 안전에 대한 위협이 그 본질이다. 유명 공포 영화 속 샤워실 살인 장면처럼 가장 사적인 공간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 친밀한 누군가가 나를 벌거벗겨 능욕할 수 있고, 일상을 공유하는 SNS가 위험천만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도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전국 초중고교에서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으로 확인돼 교육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 가해자들은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셀카를 인공지능(AI)으로 음란물과 합성해서 유포했다고 한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주로 10대다. 현재 피해 상황을 취합 중인데, 피해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학교는 450곳에 육박한다. ‘지능방’(지인능욕방) ‘겹지인방’(겹치는 지인방) 등으로 검색한 방의 숫자가 이런 정도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따르면 이 중 40곳에서는 실제 피해가 확인됐다. 피해자 중에는 여교사도 있다고 한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최근 주목을 받게 된 발단은 인하대 사건이다. 텔레그램에 자신의 딥페이크 음란 사진이 유포됐다는 것을 알게 된 인하대 졸업생 유모 씨는 해외에 서버가 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자 자신이 직접 추적에 나섰다. 딥페이크가 올라온 방을 찾아 들어갔더니 자신의 음란 사진, ‘주인님’이라 하는 음성 파일, 이모티콘까지 공유되고 있었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나도 혹시’ 하며 불안감을 느낀 10, 20대 여성들이 자신도 피해자가 된 것은 아닌지 텔레그램을 뒤지기 시작했다.

▷유 씨가 1년 넘도록 끈질기게 증거를 모았지만 처벌을 받은 사람은 그 방 참여자 1200명 중 단 1명에 그쳤다. 붙잡히긴 했지만 “우연히 봤다”고 주장해 풀려난 참여자도 있었다. 성폭력처벌법이 허위 영상물을 제작·유포하는 것은 처벌해도 단순히 시청만 하는 것은 죄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고 딥페이크를 유포한 1명만 징역형을 받은 것이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이번에 초중고에서 피해 사례가 확인돼도 처벌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사건도 유 씨 사례처럼 피해자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경우다. 딥페이크 사진이 유포된 방을 찾아 증거를 수집하고 학교 명단을 작성했다. 소셜미디어 계정을 비공개하고 사진도 감췄다. 확인된 피해가 늘어나고 여론이 들끓자 그제야 경찰은 대대적인 단속을 약속했다. 국회에선 처벌을 강화하는 입법이 쏟아진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모욕이 놀이가 되고, 혐오를 과시하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평범한 하루가 언제 공포로 뒤덮일지 모를 일이다.

#딥페이크#성범죄#텔레그램#성폭력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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