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가치[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22>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27일 23시 00분




“대신 사람은 죽이지 마.”


― 추창민 ‘행복의 나라’

“왕이 되고 싶으면 왕 해. 돈이 갖고 싶으면 대한민국 돈 다 가져. 대신 사람은 죽이지 마.” 추창민 감독의 영화 ‘행복의 나라’에서 변호사 정인후(조정석)는 합수단장 전상두(유재명)에게 독기에 찬 시선으로 그렇게 말한다. 1979년 10월 26일 벌어진 대통령 암살 사건에 상관의 명령으로 개입하게 된 박태주(이선균). 사실상 재판을 뒤에서 좌지우지하는 전상두에 의해 그는 소신을 꺾지 않으면 사형을 당할 처지다. 박태주는 군인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게 소신이고, 그래서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거라고 말하는 타협 없는 인물이다. 정인후는 어떻게든 사형만은 막기 위해 박태주에게 법정에서 유리한 증언을 제안하지만 그는 끝내 이를 거부한다.

10·26 사태에 연루되어 군사재판을 받았던 박흥주 대령의 실화를 극화한 이 작품은 ‘사람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박태주가 죽을 걸 알면서도 끝까지 고집하는 소신은 그를 변호하는 정인후를 미치게 만들지만, 거기에는 생사 앞에서도 굳건한 사람의 위대한 가치가 엿보인다. 박태주의 그런 선택은 그 정반대에 서 있는 전상두라는 인물의 가치를 보잘것없게 만든다. “니가 무슨 짓을 하든 그놈은 죽어.” 제 권력과 욕심에 눈멀어 생명과 소신 따위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 그는 괴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로 왕이 절대 권력을 갖던 시대에 사람의 가치는 그 말 한마디에 생사가 바뀔 수 있을 만큼 가벼웠다. 돈이 절대적인 힘이 되어 버린 시대에도 사람의 가치는 돈 앞에서 폄하되곤 한다. 정인후가 굳이 권력과 돈을 다 가져도 좋지만 사람만은 죽이지 말라고 애원하는 건 그래서다. 제아무리 사람의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해도 끝내 지켜야 할 한 가지가 바로 생명이니 말이다.

#사람의 가치#행복의 나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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