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 처분을 놓고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아 청탁금지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분석들이 종종 눈에 띈다. 다른 혐의 적용 가능성까지 포괄적으로 염두에 둔 표현이라면 몰라도 청탁금지법 자체는 대가성과 무관하다. 애초에 이 법이 만들어진 것은 대가성을 입증 못해 처벌 못했던 ‘스폰서 검사’ 사건 같은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청탁금지법에서는 대가성은 물론 직무 관련성이나 명목과 관계없이 공직자가 한 번에 100만 원, 1년에 3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한다. 그런데 공직자의 배우자가 이에 해당하는 금품을 받았을 때는 기준이 달라진다. 직무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만, 그것도 배우자 본인이 아니라 이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공직자를 처벌한다. 행위자와 처벌 대상이 다른 것은 ‘자기책임의 원리’가 적용되는 헌법 체계에서 이례적이다.
이에 관한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는 2016년 배우자 대신 공직자를 처벌하는 것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공직자와 배우자는 “경제적 이익 및 일상을 공유하는 긴밀한 관계”여서 배우자가 받은 것은 공직자 본인이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다. 헌재 결정은 존중돼야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여전히 “책임과 형벌의 비례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우자 처벌 빠진 청탁금지법… “개정 불가피”
이렇게 법이 만들어진 데는 공직자 직무와 관련 없는 금품까지 배우자가 못 받게 하면 배우자의 사적 활동을 지나치게 제약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고 한다. 청탁금지법 제정 당시 적용 범위가 너무 넓다는 지적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잉 입법을 걱정한 것에도 일리는 있다. 다만 영향력이 막강한 고위공직자의 배우자가 금품을 받는 상황까지 예상했다면 법 조항을 더 정교하게 다듬었을 것 같다.
배우자의 금품 수수에 관한 청탁금지법 규정은 국민의 법 감정과 맞지 않고 법리적으로도 논쟁의 소지가 있어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 법은 대통령부터 최말단 공무원과 일부 민간인까지 적용되는 만큼 그 배우자가 받는 금품의 성격도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다. 적어도 고위공직자의 배우자에 대해서는 직무 연관성을 배제하거나 훨씬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위반한 배우자에게도 책임을 묻는 게 합리적이라고 본다.
‘명품백 사건’은 법의 잣대로만 따질 일 아냐
그보다 먼저 법이 정한 경계가 모호할지라도 공직자의 배우자가 고가의 선물을 받는 게 용인되는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했다. ‘공짜 선물’은 없고 모든 돈에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는 게 세상의 이치다. 법에 적혀 있지 않아도 도덕과 상식에 따라 뭘 받으면 안 되는지 가늠할 수 있고 이를 지켜야 한다. 대통령 부인에게 화장품과 양주 등을 선물한 데 이어 디올백까지 들고 나타난 최재영 씨의 행동은 ‘몰카’ 목적이었다는 걸 몰랐다 해도 수상쩍었을 것이다. 만남을 피하기 곤란했다면 선물이라도 거절하는 게 당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 “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에 대해 사과했다. 설령 법적으론 처벌할 수 없다는 최종 결론이 나와도 달라질 건 없다. 오히려 김 여사 조사 과정에서의 논란 등이 더해지면서 여론의 시선은 더 따가워졌고,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재차 사과해도 부족할 판이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이 무혐의 방침을 밝힌 직후 일부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연한 결과” “본질은 몰카 공작”이라고 했다. 마치 승자의 발언처럼 들린다. 윤 대통령 부부도 같은 생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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