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거리는 상냥함 없어도… 오직 맛에 진실한 옛날짜장[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29일 22시 57분


서울 은평구 신사동 ‘옛날짜장’의 쟁반짜장(위쪽)과 볶음밥. 김도언 소설가 제공
서울 은평구 신사동 ‘옛날짜장’의 쟁반짜장(위쪽)과 볶음밥. 김도언 소설가 제공

우리 동네요, 중국집이요, 옛날짜장이다. 이런 구색이면 수다스러울 정도로 할 말이 많아야 하는데 이 집은 묘하게도 단골손님에게조차 많은 정보를 흘리지 않는다. 좀 단호하게 말하면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 집이다. 내가 이 집을 쓰기로 마음먹으면서도 할 말이 궁하지 않을까 염려되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20년 동안 꾸준하게 다닌 집이어서 음식 맛에 대해서만큼은 과장 없이 정확히 말할 수 있다. 진짜 틀림없이 맛있다. 세월이 세월이니만큼 가격은 어쩔 수 없이 조정됐지만 맛은 아무 변함이 없다. 변함이 없는 게 또 있는데 이 집 주인 내외의 과묵함과 고지식함, 그리고 원칙이다.

김도언 소설가
김도언 소설가
‘옛날짜장’을 아예 상호로 쓰면서 간판을 달아둔 이 집은 은평구 신사동 새절역 부근에 있다. 오가는 행인이 비교적 한적한 도로변 1층, 같은 자리에서 20년째 영업 중이다. 이 집의 대표적인 메뉴는 짜장면, 특히 진하고 맵게 볶은 쟁반짜장이다. 개인적으로 쟁반짜장을 워낙 좋아해서 서울 시내 중국집에 갈 일이 있으면 나는 다른 메뉴엔 곁눈을 안 주고 십중팔구 쟁반짜장을 주문한다. 중국집마다 쟁반짜장을 볶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나는 사천식으로 다소간 맵게 볶는 이 집 쟁반짜장을 서울 시내 1등 쟁반짜장으로 꼽는 데 주저할 생각이 없다. 넉넉한 채소와 새우살과 오징어, 그리고 돼지고기가 춘장, 고춧가루 양념과 잘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낸다. 비법 전분을 쓰는지 면과 소스가 볶아질 때의 점도랄까 그 끈적함도 충분히 감칠맛을 돕는다. 거기에 양도 푸짐해서 다른 집 곱빼기에 준하는 양이다. 가격은 7000원.

홀은 10평 안쪽이고 테이블도 많지 않아 3∼4인 가족 단위로, 친구 단위로 와서 조용히 먹고 간다. 낡고 투박한 간판도 그렇지만 이 집의 테이블이나 인테리어, 천장에 설치한 TV도 옹색하기 그지없다. 이 집 내외는 음식 맛을 내는 것 말고는 도무지 다른 덴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음식점 주인의 그런 태도를 허물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집 주인 내외의 인상은 무척이나 투박하고 무뚝뚝해서 손님들과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식객들을 향해 웃는 경우도 없으니 상냥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특히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남자 사장님의 강퍅한 말투에선 자기 세계에 대한 고집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한자리에서 사랑을 받으며 20년 장사를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잠깐 다른 질문을 던져본다. 사람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건 무얼까. 보통은 친절함과 다정함 같은 게 떠오른다. 거기에 겸손과 배려와 예의가 섞일 때 사람은 타인에게 끌리고 그를 신뢰하면서 친교의 단계로 나아간다. 하지만 고전적인 가치들이 어지간히 전도되고 윤리적 착종이 일상화된 세계에서 그런 고유한 관계의 기반은 훼손되었다. 웃는 얼굴을 하고 타인을 속이고 타인을 증오하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옛날짜장’ 사장님 내외분은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예컨대 두 분 사이에 이런 다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믿지 말고 자신을 속이지도 말고 우리 음식 맛에만 진실합시다.’ 나는 이런 우직함이 살랑거리는 상냥함보다 훨씬 믿음직스럽다.
#옛날짜장#노포#중국집#쟁반짜장#볶음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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