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곽도영]또다시 시험대에 선 강소국 경제 안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29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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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도영 산업1부 기자
곽도영 산업1부 기자

2021년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긴급 대책회의에 삼성전자를 호출했을 때 국내 재계에는 일대 파장이 일었다. 글로벌 반도체 수급난으로 포드, GM 등 자국 기업들이 위기에 처하자 백악관이 나서서 대내외 반도체 기업들을 소집한 것이었다. 이례적으로 맞닥뜨린 백악관 공식 호출에 삼성전자는 가석방 상태였던 이재용 회장(당시 부회장)을 대신해 누구를 ‘사절’로 보낼 것인지, 미국 정부의 요청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비상이 걸렸다.

이제는 익숙한 단어가 된, 바이든발(發) ‘경제 안보’ 재편의 시작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글로벌 반도체 수급난, 미중 갈등으로 촉발된 미국 경제 안보 정책은 한국 경제와 산업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는 백악관 회의 참석 이후 자사의 공급망 관련 자료를 미국 정부에 제출해야 했다. 삼성과 SK, 현대자동차, LG 등 한국의 주요 그룹들은 신규 생산기지를 미국 현지로 대거 선회했다. 올해 상반기(1∼6월) 대미 수출액이 대중 수출액을 뛰어넘는 등 한국의 오랜 무역 구조에도 이변이 생겼다.

70일도 안 남은 미국 대선을 앞두고 국내 산업계는 또다시 물밑 외교전에 뛰어들었다. 미국에 역대 최대 규모 투자 계획을 밝힌 삼성은 상반기에만 총 354만 달러(약 47억 원)를 미국 정부와 의회 로비에 썼다. 1998년 로비 내역 집계 이래 상반기 기준 최대 금액이다. 미국 정·관계의 로비 자금을 추적하는 비영리단체 ‘오픈시크릿’이 이달 공개한 주요 기업 상반기 로비 집행 예산 현황에 따르면 국내 4대 그룹 모두 전년 동기 대비 로비 금액을 10% 넘게 늘렸다.

전선(戰線)도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불과 한 달여 전까지 압도적 우세를 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反)친환경 산업 정책 리스크에 대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떠오르는 카멀라 해리스 후보의 청정에너지 전환 속도도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 양당 누가 대통령이 되든 또다시 대중(對中) 규제는 새 정부의 ‘내부 다지기’용 첫 카드가 될 확률이 높다.

문제는 그 가운데서 우리 기업이 언제든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산업계는 이미 생존을 위해 미국 정부가 올해 발효 예정인 대중 제재에 건의서를 제출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본보 8월 16일자 A1·3면 참조).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칩스법 때도 재계 총수들이 잇달아 미국 출장길에 오르며 물밑에서 정·관계 설득에 힘써 왔다.

‘강소국 외교’가 가진 태생적 부담을 고려하더라도, 이제 외교 당국과 관계 부처도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 새 정국에 기민하게 안테나를 꽂고 이들과 함께 뛰어야 한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를 계기로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 규제를 삼성, SK가 결국 유예받았던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IRA로 한국산 전기차가 세액공제 대상에서 빠지게 되는데도 정부의 사전 대응이 늦었던 점은 끝까지 아쉬움으로 남았다. 백악관의 삼성전자 호출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 단순히 기업들만 시험대에 오른 것이 아니다. 한국의 핵심 산업 앞에 놓인 미래와 국가 경제 안보가 달려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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