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사활 건 R&D, 정부는 비효율 늪[오늘과 내일/염한웅]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29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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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정부 연구개발(R&D) 투자의 효율성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현 정부가 올해 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근거로 R&D 비효율성을 거론해 큰 이슈가 됐다. 그리고 지난주에 발표된 ‘네이처 인덱스’ 한국 특집호 기사에서 다시 거론돼 논쟁에 불을 지폈다.

사업 평가 다음 정부로 넘어가 무신경


R&D 비효율성은 ‘코리아 R&D 패러독스’라는 명칭이 붙어 지난 20여 년간 논의된 해묵은 문제이다. 네이처의 분석은 한국의 현실을 모두 다 담지 못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의 비중은 세계 2위인 데 반해 네이처 인덱스의 지표로는 8위권으로, 이 지표만 보면 매우 비효율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총 연구개발비 규모는 세계 6위권이고, 국방 R&D 지출을 뺀 정부 R&D 지출 규모만 보면 일본의 27%, 독일의 45%에 그친다. 여기에 네이처 인덱스 지표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우수 논문 산출량은 일본의 56%, 독일의 37%다. 일본보다는 효율적이지만 독일에 비해서는 비효율적이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의 R&D 투자를 단순히 비효율적이라 비난하기 어렵다.

논문 산출로 나타나는 우리나라 R&D 지출의 비효율성 원인을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전통적인 연구 선진국들과 비교를 통해 찾아봤다.

외형적인 데이터로부터 주목할 점은, 연구 선진국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논문을 결과물로 하지 않는 기업의 연구비 지출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전체 연구비 지출 대비 논문 산출량이 낮은 것은 한국 기업들이 R&D에 사활을 걸고 집중 투자하고 있는 결과인 셈이다.

문제는 정부 R&D다. 전체 R&D 지출의 30% 정도 되는 정부 R&D 기조가 좋은 논문을 낼 수 있는 과학기술 연구보다 신산업 창출과 주력산업 지원에 집중돼 있다. 이런 이유로 과학기술 R&D 비중이 높은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이 우리나라보다 많은 논문을 산출하고 있다.

산업 혁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정부 주도 프로젝트들은 주로 추격자형 지원에 집중돼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터 관련 메가 프로젝트가 전형적인 예다. 미국의 혁신기업과 글로벌 대기업들이 개발한 혁신 기술들을 정부 프로젝트로 추격하는 꼴이니 효율이 높을 수 없다. 새로운 혁신으로 나아가기도 힘들다.

추격자형 정부 R&D를 개혁하는 것은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다. 전 정부 후기 그리고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전략기술 개발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들에서 추격자형 R&D는 더욱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당분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형 연구과제들의 경우 중간평가와 사후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큰 문제다. 정부는 5년간 지속되는데, 정부 임기 중간에 만들어지는 대형 연구 프로젝트는 대부분 중장기 프로젝트다. 평가가 다음 정부의 몫으로 넘어가므로 현 정부에서 연구과제를 수행할 때는 기획에만 몰입하는 형태가 고착되어 있다. 따라서 대형 정부 R&D 프로젝트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하는 것이 정부 R&D의 비효율성을 개선하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정부는 R&D 비효율성이 카르텔이나 연구 현장이 아니라 정부 자체에 내재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추격자형 연구’ 지원 집중돼 혁신 한계

적확한 진단과 평가 없이 R&D 예산을 일괄 삭감한 현 정부의 정책은 이미 충분히 평가되었기에 여기서 더 언급하지는 않겠다. 지난 2년간의 예산 삭감이 연구 현장에 큰 충격을 주어 네이처 인덱스 등 논문 산출 지표에 이미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데이터에 기반한 정확한 진단과 평가. 이것이 비효율적으로 낭비되는 정부 R&D 지출을 효율화하는 기본이고, 우리나라의 R&D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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