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 기자회견에서 의대 증원 계획에 쐐기를 박은 뒤 같은 날 열린 국민의힘 연찬회에서는 의료 공백 장기화에 대해 ‘친윤계’ 의원들조차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들이 나와 의대 증원 계획을 재확인하자 “당신들 보고와 달리 의료 현장은 어려워하고 있다”며 “결사항전인 전공의를 복귀시킬 복안이 있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이에 이주호 부총리는 “6개월만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고 말해 “의사를 적으로 보느냐”란 의원들의 지적을 받고 사과했다고 한다.
정부가 의료개혁의 동반자인 의사 집단을 적대시하는 건 심각한 문제다. ‘승리’를 자신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가 이긴다”는 말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못 버티고 복귀해 정부 계획대로 의대 증원을 하고 의대 교육도 정상화한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시종일관 의대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여당 대표의 2026학년도 의대 증원 보류 제안을 정부가 일축한 후 전공의들의 태도는 더욱 강경해진 상태다. 정원이 늘어난 32개 의대는 의대생들이 당장 복귀해도 이미 정상적인 교육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뭘 믿고 이긴다는 건가.
의대 증원을 관철하기 위해 한계 상황에 이른 의료 공백 사태를 6개월 더 끌고 가겠다는 것은 국민 건강을 책임 진 정부로선 무책임한 일이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추석 응급실 대란을 우려하는 질문에 “현장에 가보라”고 반박했는데, 전공의에 이어 전문의들까지 빠져나가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 응급의료 현장의 실상이다. 수술 공백도 심각해 이식 수술을 기다리다 사망한 경우가 지난해보다 7.5% 늘었다. 환자와 가족들은 “6개월은커녕 하루도 못 버틴다”는 심정일 것이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필수과목의 수가를 인상하고 상급종합병원의 중증환자 비율을 높이는 내용의 1차 실행 방안을 30일 발표했다. 의사 수급 추계 기구도 올해 안에 출범한다. 의사 추계 조직부터 만들어 적정 의사 수를 추산하고 이에 근거해 의대 증원을 했더라면 의사들도 반대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두서없이 일하는 바람에 의대 증원 문제에 가려져 의료개혁이 시작부터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의정 다툼의 최대 피해자이자 패자는 국민이다. 당정이 합심해 사태 수습을 서둘러야 한다. “증원 못 하면 지는 것이다”라며 오기 부릴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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