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지배주주의 이익만 중시하는 이사회의 결정 때문에 투자자의 신뢰가 떨어지는 만큼 상법이 규정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법이 이런 식으로 개정되면 이사진에 대한 배임 소송 등이 남발될 가능성이 커 경영 현장의 혼란을 부추길 뿐이다. 소액주주들에게 돌아갈 실익도 크지 않다.
앞서 이 원장은 6월에도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사의 소액주주 보호 의무를 상법 등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총주주’로 확대하고, ‘주주의 비례적 이익’ 같은 표현을 넣는 법안을 내놓고 있다.
상법상 ‘이사의 회사 충실의무’는 기업 이사가 지위를 이용해 회사에 불이익을 주거나 사익을 추구하는 걸 금지하는 규정이다. 대주주 편을 들어 회사에 불이익을 줄 경우 지금도 손해배상 책임, 배임·횡령의 죄를 물을 수 있다. 또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충돌은 주주총회에서 해결할 문제다. 상법을 고쳐 소액주주 이익에 과도하게 무게를 실을 경우 ‘1주 1의결권 원칙’ ‘주주 평등의 원칙’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정책 입안 부서도 아니고, 금융 현장의 감독 실무를 맡고 있는 금감원 수장이 법 개정 논의를 주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검사 시절 대통령과의 친분 때문에 실세로 불리는 이 원장이 소관 업무를 넘어 좌충우돌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상법은 경제 질서의 근간을 규정하는 기본법이다. 법을 바꾸려면 오랜 토론과 합의를 거쳐야 한다. ‘주가 띄우기’란 미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불쑥 법체계를 흔들 일이 아니다. 벌써 상법 개정을 우려해 인수합병(M&A)을 중단하겠다는 기업이 줄을 잇고 있는데, 현실화하면 경제 활력은 떨어지고 오히려 주가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배당 등 주주 환원을 확대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고, 공시를 강화해 기업 활동의 투명성을 높이는 등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다. 괜히 논란만 키우고, 주주들 사이의 갈등만 부추길 법 개정 논의는 일찍 접는 것이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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