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웅덩이 속 빛나는 별빛[내가 만난 명문장/송수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1일 22시 51분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루리 ‘긴긴밤’ 중

송수연 아동문학평론가
송수연 아동문학평론가
루리의 ‘긴긴밤’은 동화책이다. 2021년 발간된 이후 어린이를 뛰어넘어 폭넓은 독자에게 사랑받으며 올여름 50만 부 기념 에디션을 발간했다. 작년에는 판소리로, 올가을에는 뮤지컬로 무대에 오른다. 동화 한 편이 발간 직후부터 이렇게 꾸준하게 사랑받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 책의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이야기의 주인공은 인용구를 말하는 어린 펭귄과, 그의 아버지들인 펭귄 치쿠와 윔보 그리고 코뿔소 노든이다. 이야기는 코뿔소 노든이 코끼리 고아원에서 살던 평화로운 시절을 뒤로하고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고아원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노든의 삶은 그야말로 우리 삶의 압축판이다. 우리 인생에는 우리가 자초한 불행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불행도 있다. 후자의 고통 앞에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작품은 우리네 인생이 ‘긴긴밤’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함께하는 이들로 인해 놀랄 만큼 아름다운 ‘빛나는 별’을 가끔 만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대부분 고통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긴긴밤을 우리가 견뎌내야만 하는 이유, 견뎌낼 수 있는 이유는 나를 향해 있던 수많은 이들의 긴긴밤 때문이라는 것, 그들의 긴긴밤이 나를 거쳐 또 다른 누군가의 긴긴밤을 비춰 주는 가느다란 등불이 된다는 사실을 이야기는 말해준다.

어린 펭귄이 긴긴밤을 통과해 자신의 별빛을 찾아가는 것처럼, 오늘도 홀로 긴긴밤을 통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책이 ‘더러운 웅덩이 속 빛나는 별빛’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루리#긴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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