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국회에서 만나 양당의 민생 공통 공약을 추진하기 위한 협의기구를 운영하기로 했다. 의료공백 사태와 관련해선 정부를 향해 추석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하고, 양당이 국회 차원의 대책도 협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 등 쟁점 현안에 대해선 별다른 논의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여야 당대표 간 공식 회담이 열린 것은 2013년 이후 11년 만이다.
양당은 어제 회담 결과를 정리한 공동발표문에서 8개 항에 걸쳐 향후 양당 간 논의의 방향과 틀을 제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국가전력망, 가계·소상공인 지원, 저출생 대책, 딥페이크 성범죄, 지구당 재도입 등에 대한 ‘검토 협의’ ‘적극 논의’ ‘신속 추진’을 다짐하는 등 공동 추진 과제를 좁혔다.
의제 선정과 생중계 여부를 놓고 옥신각신한 끝에 2주 만에 성사된 회담이고, 며칠 전엔 22대 국회 들어 첫 여야 합의로 민생법안이 처리된 만큼 기대도 적지 않았다. 핵심 쟁점 현안에서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고, 민생 현안에서도 구체적 합의를 내놓지는 못했지만 첫 만남이었던 만큼 다양한 현안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평가할 만하다.
모두발언에서는 두 대표 간의 신경전이 부각되는 모습이었다. 한 대표는 정치 개혁과 정쟁 중단을 주장하며 민주당의 검사 탄핵을 ‘재판 결과에 불복하기 위한 빌드업’에 빗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정조준했다. 이에 이 대표는 한 대표가 제안한 제3자 추천 방식의 해병대원 특검법 수용 의사를 밝히며 “입장이 난처한 건 이해하지만 이제는 결단해야 한다”고 한 대표를 강하게 압박했다.
사실 무한정쟁 속 가파른 여야 대결구도와 여권 내 당정 간 긴장관계를 보면 두 대표가 만나서도 실질적 합의를 내놓기 어려운 게 작금의 현실이다. 무엇보다 한 대표가 대통령실과의 관계 재정립을 추진한다지만 그렇다고 국정의 한 축으로서 대통령과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처지에서 여야 대표가 국가적 현안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고 추석 응급의료체계 구축을 정부에 함께 주문한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대통령실과 정부도 이런 회담 결과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두 대표의 첫 회담은 아쉬움이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출발점이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강조한 ‘정치 복원’은 절실한 과제다. 대결과 불신의 늪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 한 번의 만남으로, 한 차례의 정치쇼로 끝낼 수는 없다. 22대 첫 정기국회가 오늘 시작된다. 이제 실질적인 합의와 그 이행을 위해 더욱 자주 통화하고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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