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법률가와 의료인은 대표적인 전문가 집단으로 여겨진다. 역설적이게도 최근 가장 큰 위기를 맞은 두 집단이기도 하다. 의정 갈등 국면에서 벌어진 의료계의 집단행동, 정치권 수사에서 검찰이 보여준 공정성 논란은 두 집단의 전문성을 국민이 의심하게 만들었다. 특히 우리 사회의 법조인들에 대한 불신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 그중에서도 형사사법 분야, 검찰의 위기는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김건희 여사 수사를 둘러싼 검찰 내부 갈등이다. 7월 김 여사를 검찰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 조사하면서 시작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검찰총장 보고 패싱, 특혜 시비가 불거지면서 수사는 결론이 나오기도 전에 상처투성이가 됐다.
김 여사의 디올백 수수 의혹 사건 처분을 앞두고 이원석 검찰총장이 ‘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카드를 꺼내면서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이 총장은 수사팀으로부터 김 여사가 무혐의라는 결론을 보고받은 다음 날 “수사팀의 증거판단, 법리해석이 충실히 이뤄졌다”면서도 “공정성을 제고하고, 더 이상 논란이 남지 않도록 매듭짓겠다”며 수심위를 소집했다.
검찰이 논쟁적인 사건을 수사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꺼내는 문구가 있다. “오직 증거가 가리키는 대로” “법리에 따라 원칙대로 수사”. 증거와 법리엔 문제가 없다면서 김 여사 사건은 외부 전문가들의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김 여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자신들의 법률적 전문성을 의심받을 정도로, 공정할 의무에 대한 전문성을 의심받았다는 점이다. ‘권력자’의 가족을 검찰청사가 아닌 곳에서, 외부의 시선을 걱정할 것 없이 조사받을 수 있게 했으니 앞으로 누구나 “나도 똑같이 해달라” 요구해도 검찰이 할 말이 없게 됐다. 실제로 김 여사 조사 이후 ‘전직 영부인은 어떻게 조사할 거냐’ 등의 논평이 넘쳐난다. 정치적 공세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언을, ‘공정한 수사’라는 전문성을 놓친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을 검찰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전문가 집단이 위기에 처한 대표적인 모습이다. 전문가의 위기는 전문성을 위협하는 각종 사회적 압력에 더해, 전문가들 스스로가 전문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나 의지를 보이지 않을 때 벌어진다.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톰 니콜스는 저서 ‘전문가와 강적들’(2017년)에서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미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세계 도처에서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법대로 하자”는 말을 한국처럼 자주 하는 나라는 드물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이는 그간 법률가들의 전문성, 그리고 이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한국 사회를 지탱한 중요 버팀목 중 하나였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전문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형사 사법 분야의 전문가인 검찰을 위협하는 ‘강적들’을 누가 만들었는지 검찰 스스로 되새겨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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