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이라는 정부 정책과 맞물려 한때 하버드대 철학교양서인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의 읽기 열풍이 크게 불었던 적이 있다. 그 책은 단순히 대중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의가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규제적 이념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줬다.
서양철학에서 정의라는 말에 해당되는 말이 고대 희랍어 디케(dik ̄e)에서 유래하여 정의의 여신을 디케(Dik ̄e)라고 부른다. 디케가 ‘둘로 나누다’의 의미를 갖기 때문에 정의는 공정한 분배를 뜻한다. 그러나 어떤 기준에 따라 분배를 해야 공정한지는 지금까지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인도 출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은 ‘정의의 개념(The Idea of Justice·2009년)’에서 피리를 예로 들어 정의로운 분배를 설명한다. 세 명의 아이를 둔 아버지가 누구에게 피리를 줄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첫째 아이는 피리를 자신이 잘 불 수 있기 때문에 피리는 자신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아이는 아버지가 몇 달 동안 피리 만드는 일을 도왔기 때문에 피리가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셋째 아이는 자신이 지금까지 장난감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엔 자신이 피리를 받아야 된다고 말한다.
짧은 예시에는 지금까지의 정의론의 내용이 함축적으로 들어 있다.
첫째, 피리가 연주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피리를 잘 부는 사람이 피리를 갖는다는 주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공적주의(功績主義)와 일치한다. 또한 훌륭한 연주는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점에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 입장의 지지를 받는다. 이러한 견해는 오늘날 개인의 능력을 정량적으로 평가해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주는 능력주의(Meritocracy)와 연관이 있다.
둘째, 피리를 제작하는 데 자신의 노동이 들어갔기 때문에 피리가 자신의 것이라는 주장은 소유 정의론(entitlement theory)과 합치된다.
셋째, 다른 아이들과 비교할 때 제대로 받은 것이 없기 때문에 최소 수혜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자유 평등주의(liberal egalitarian) 정의론의 입장과 연결된다.
아버지는 피리를 누구에게 줘야 정의로운 분배가 이뤄지는가? 피리를 잘 불어야 한다는 상식에서 보면 노력한 공적(desert)에 맞게 피리를 나눠줘야 된다. 그러나 피리를 갖고만 있는 피리 수집가의 권리도 보장해줘야 된다. 피리를 불지 못한다고 소유권을 박탈할 수는 없다. 끝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불운한 환경에 처해 피리조차 가져보지도, 불 기회조차도 없는 사람에게 피리를 줘야 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피리 대신 자동차를 예시로 들어 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다. 명품 스포츠카가 한 대 있다고 하면 차를 잘 모는 F1 경주 우승자, 면허증도 없이 자동차를 수집한 사람, 운전면허증도 갖지 못한 사람이 각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오늘날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이끌어 내려는 존 롤스 식의 정치철학에서는 능력이나 소유보다 개인의 불운을 더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소 수혜자의 권리를 우선 고려하다 보면 능력에 따른 분배를 주장하는 공적주의의 입장이 약해질 수 있다.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 주는 것’, 즉 응분의 몫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피나는 노력이 무의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에게 자동차를 주기보다는, 최소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먼저다. 최소한의 자격인 운전면허증 없이 차를 몰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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