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은 지난달 파리 올림픽에서 단체전 10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10번의 우승에 힘을 가장 많이 보탠 사람은 ‘원조 신궁’ 김수녕(53)이다.
김수녕은 여고생이던 1988년 서울 올림픽 단체전에서 왕희경, 윤영숙과 함께 금메달을 따내는 등 대회 2관왕에 올랐다.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때는 조윤정, 이은경과 함께 금메달을 수확했고,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도 김남순, 윤미진과 함께 금메달을 합작했다. 김수녕은 세 차례의 올림픽에서 모두 6개(금 4, 은 1, 동메달 1개)의 메달을 따 한국 선수 중 가장 많은 올림픽 메달을 갖고 있다. 후배들의 10연패를 TV로 지켜본 그는 “큰 부담을 이겨낸 후배 선수들이 너무 대견하고 대단하다”고 말했다.
은퇴 후 스위스 로잔에 있는 세계양궁연맹(WA)에서 일하던 그는 2014년부터 올해 초까지 10년간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물며 왕가 공주들에게 양궁을 가르쳤다. 그는 “여러 조건이 나와 잘 맞았다. 그쪽에서 30세 넘은 여성, 그리고 전문 선수를 거친 지도자를 원했다. 영어도 필수 조건 중 하나였는데 WA에서 일하면서 익힌 영어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사우디 생활이 그에겐 잘 맞았다. 무엇보다 시간 여유가 많았다. 그는 “저는 혼자서도 가만히 있는 걸 잘하는 스타일이다. 장도 보고 사람도 만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곤 했다. 좀처럼 심심할 틈이 없었다. 어찌 보면 10년간 인생 최대의 휴가를 보내고 왔다고도 할 수 있다”며 웃었다. 그는 또 “음식을 가리는 편도 아니라 사우디에서도 잘 먹고 잘 살았다. 한식을 요리해 먹기도 하고 현지에서 유명한 양고기를 사 먹기도 했다. 중동식 디저트 역시 종류도 다양하고 맛있었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며 잠시 휴식을 취한 김수녕은 얼마 전부터 그가 가장 좋아하고, 또 잘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바로 양궁의 재미와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그는 경기 오산시에 있는 한 양궁 체험 시설로 출근하고 있다. 국산 양궁 장비 업체 ‘파이빅스’가 운영하는 곳이다. 이 업체는 파리 올림픽 남자 개인전 64강 김우진과의 대결에서 1점을 쏘며 눈길을 끌었던 아프리카 나라 차드 선수 이스라엘 마다예를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까지 후원한다.
김수녕이 이곳에서 일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김수녕은 “한국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 내 이름도 기사에 종종 나온다. 나도 올림픽 효과를 제대로 보고 있는 셈”이라며 “어린이부터 70대 어르신까지 모든 분들이 양궁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옆에서 돕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사우디에 있을 때부터 운동을 좀처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고, 또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며 “덕분에 젊었던 시절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 앞으로도 양궁의 재미와 즐거움을 나누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찾아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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