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형준]‘파워드 바이’ 시대가 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2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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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산업1부장
박형준 산업1부장

첫째 딸이 지난달 영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였다. 소나기가 쏟아지고 돌풍도 불었다. 딸은 “비행기가 추락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을 했다. 기자는 미국안전협회(NSC)의 데이터를 말해줬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1100만분의 1이다.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의 65분의 1에 불과하다. 비행기 사고가 무서워 못 타겠다면 자동차는 더더욱 타면 안 된다.” 그 말에 딸의 두려움은 곧바로 사라졌다. 공포는 상황을 잘 알지 못할 때 생긴다.

8월 내내 전기차 화재가 국내를 뜨겁게 달궜다.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벤츠 전기차에서 불이 난 게 발단이 됐다. 몇 초 동안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갑자기 폭발하듯 불타오르는 현장 폐쇄회로(CC)TV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가만히 주차된 상태에서 일어난 화재였기에 충격이 더 컸다. 그 후 기자가 사는 서울 아파트는 지상에 전기차 주차구역을 따로 만들었다. 전국이 전기차 화재 대책으로 들썩거렸다.

전기차 공포증은 기술 발전 간과

그런데 공포심이 너무 과한 건 아닐까.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차량 1만 대당 화재 건수는 내연기관차가 1.9건, 전기차는 1.3건이었다. 전기차보다 내연기관차에서 더 자주 불이 났다. 다만 전기차는 비교적 최근에 보급되기 시작했으니 새 차인데도 화재가 일어난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2021∼2023년 동안 주차 중에 불이 난 전기차는 전체의 25.9%였다. 내연기관차의 경우 소방청에 동일한 통계는 없었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불이 난 내연기관차는 전체의 18.5%라는 점을 참고하면 내연기관차도 외부 충격 없이 불이 났다는 걸 알 수 있다.

최근 ‘전기차 포비아(공포증)’는 너무 과도할 뿐 아니라 기술 발전을 간과했다는 느낌이 든다. 배터리는 아직 미완성된 기술이고 계속 진보 중이다. 예를 들어 배터리의 두뇌라 할 수 있는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은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 BMS는 배터리에 연결된 센서로 전압, 셀 온도 등 배터리에 관한 모든 정보를 측정해 배터리 이상 상황을 미리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는 화재 위험성을 크게 줄인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최근 전해질로 물을 사용해 화재 걱정 없는 배터리 상용화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몇 년 후면 전기차의 안전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배터리 기업, 초격차 기술 갖춰야


실제 비행기의 기술 발전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연방항공청(FAA)은 1984년 보잉720기를 일부러 추락시켜 승객의 좌석 위치에 따른 안전 정도를 실험했다. 2012년에 다시 NASA가 동일한 실험을 해 비행기 앞쪽보다 뒤쪽 좌석 승객의 생존 확률이 높고, 안전벨트를 맨 채 몸을 숙이는 동작이 가장 충격을 덜 받는다는 걸 확인했다. 이런 연구가 쌓이면서 비행기 사고는 크게 줄어들었다. 2020년 매사추세츠공대 아널드 바넷 박사가 2008년과 2017년 사이에 상업용 비행 안전에 대해 조사한 논문에 따르면 탑승객당 사망자 수는 10년마다 2배씩 감소했다.

지금까지 소비자들은 주로 브랜드를 보고 전기차를 구매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배터리의 안전성을 점차 중요하게 여길 것 같다. 어떤 배터리를 장착했는지를 확인하고 전기차를 사는, 소위 ‘파워드 바이(Powered by)’ 시대가 오고 있다. 그런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선 압도적인 초격차 기술력을 입증시켜야 한다. 미국이 괜히 비행기를 추락시키는 게 아니다.

#전기차 화재#전기차 포비아#bms#배터리 관리 시스템#안전성#파워드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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