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욱은 파리 올림픽 남자 사브르에서 아시아 펜싱 선수 최초로 개인전, 단체전 2관왕에 올랐다. 오상욱은 이번 개인전 금메달로 4대 메이저 대회(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개인전에서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슬램’까지 완성했다. 이 역시 아시아 최초다.
사브르는 플뢰레, 에페와 달리 찌르기뿐 아니라 베기 공격도 인정된다. 신체 조건은 물론 손기술까지 좋아야 한다. 저변이 넓어 어린 나이부터 검을 다루는 데 익숙한 유럽이 유독 독식하던 종목이었다. 한국 펜싱계에는 20년 전만 해도 ‘사브르에서는 100년이 지나도 올림픽 금메달 못 딴다’는 자조가 만연했다. 그런데 그 종목에서 올림픽 2관왕이 나왔으니 ‘기적’이라 할 만하다.
올림픽이 끝나자 화보, 광고, 방송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그런데 오상욱은 매스컴의 관심을 받을 때마다 상당 부분을 ‘운사모’(운동을 사랑하는 모임)를 소개하는 데 썼다. 운사모는 대전 지역 학생 선수 가운데 장학생을 선발해 고교 졸업 때까지 매달 20만 원씩 장학금을 주는 비영리단체다. 대전시교육청 전국소년체육대회 담당 장학사였던 이건표 회장이 돈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는 학생이 없도록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 커져 단체가 됐다.
오상욱은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에 올랐을 때도 운사모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이야기했다. 오상욱에게 어떻게 이렇게 한결같이 감사할 수 있는 거냐고 물었다. 오상욱은 “저는 그걸로 정말 장비를 사면서 운동을 했으니까요”라고 했다.
“펜싱 처음 할 때는 도복을 다 물려받아서 누런색이었어요. 장갑, 펜싱화도 찢어진 걸 꿰매 썼고요. 누가 운동 그만두면 사이즈 대충 맞는 걸 집어 왔어요. 그러다 운사모 덕에 중3이 새 장비를 사서 운동하게 된 거죠. 그렇게 불편감 없이 운동을 해 보면 정말 감사해요. 새 도복 입고 가면 애들이 ‘야 뭐야, 너 새거 샀어?’ 하는데 막 어깨가 올라갈 정도로 저에게는 큰 거였어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기 마련 아닌가. 오상욱은 “장학금을 매달 계속 주셨어요. 화장실에 계속 들어간 거잖아요. 나올 일이 없어서 계속 감사한 마음이었어요”라고 했다.
운사모 회원들은 매달 1만 원씩 회비를 낸다. 신규 회원 20명이 모일 때마다 학생 1명을 더 지원할 수 있다. 한 번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학생이 스스로 운동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지원이 끊기지 않는다. 당장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튼튼한 토양을 마련해주자는 게 단체의 취지다. 오상욱도 성인이 된 뒤 운사모 회원이 돼 학생들을 후원하고 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꾸준히 주기만 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동시에 꾸준히 사랑을 받으며 한결같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중3 오상욱은 그 어려운 마음을 품고 실천한 어른들 덕에 올림픽 2관왕으로 컸다. 이제는 오상욱 같은 어른 덕에 더 많은 미래의 오상욱들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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