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심리학에는 공포관리이론(terror manage ment theory)이라는 흥미로운 관점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인식할 수 있는 주체이기에, 자신이라는 존재의 소멸 가능성과 그 불안감(심리적 terror)을 극복하기 위해 진화해왔다는 관점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자신보다 영속적인 것들, 자신의 사후에도 존재할 것들을 만들어내고 유지시키고 발전시켜 왔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것들이 가족, 가계, 국가 같은 조직의 의미, 다양한 문화, 종교적 가치 등이다. 실제로 심리학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게 한다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죽음과 관련된 개념을 자각시키면(심리학 용어로 죽음의 현저성이 높아지면) 기존에 자신이 속해왔던 조직, 문화, 가치를 더 강하게 믿고 지지하고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의식적이 아니라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된다.
관점에서 한국 사회의 저출산은 너무나도 이해가 된다. 기존의 과학은 번식, 자신의 자손을 퍼뜨리는 것이 인간의 근본 욕구 중 하나이고, 선조들과 기성세대들은 자식을 가지고 싶은 것은 본능이라고 얘기했다. 그 시각에서는 지금의 세대가 자식을 가지지 않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죽음을 두려워해서 자신의 소멸을 걱정했을 때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30대였던 조선시대, 환갑 전에도 사망하는 주변 사람이 수두룩했을 때 얘기다. 지금은 오히려 너무 오래 살까 봐 걱정인 시대가 됐다. 평균수명은 이미 80대를 훌쩍 넘겼고, 기대수명은 100세가 훨씬 넘어갈 거라고 한다. 우리의 젊은 세대에는 죽음이 빨리 올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을까, 죽음이 너무 늦게 올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을까? 아마 이들에게 죽음의 현저성은 매우 낮아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조직, 문화, 가치에도 별로 의미를 두지 않고 굳이 자신의 죽음 뒤에 남길 뭔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러니 지금도 그들이 모두 자식을 너무너무 가지고는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못 가져서 불행하게 산다는 그 일반화된 가정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스럽다. 저출산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담론은 아이를 못 가지는 이유를 물어보고 그 장애물을 없애는 데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 장애물을 모두 없앨 수는 있으며, 과연 아이를 가질 만한 완벽한 세상이 오면 출산율은 드라마틱하게 올라갈까? 우리 선조들과 부모들이 지금의 우리까지 낳은 이유는 그때가 훨씬 더 아이를 가질 만한 세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훨씬 혹독한 장애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해왔던 출산과 육아, 양육에 편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고 더욱더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가치가 없는 사회에서 장애물 몇 개 없앴다고 출산율이 올라갈 것 같지는 않다. 아이를 못 가지는 이유 이전에 아이를 가져야 하는 가치가 상실된 사회에서는…. 그렇다고 모두 죽음을 직면하게 하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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