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정은]尹 대통령의 불안한 ‘한국형 헨리 키신저’ 실험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4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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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부국장
이정은 부국장

용산 대통령실 경호처 부속건물에 최근 한때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새로 만들어지는 외교안보특별보좌관 사무실을 한번 보고 싶다며 방문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기존에 쓰던 다른 사무실 일부를 헐어 특보실로 만드는 공사가 아직 진행 중인 데다 폭염 속 에어컨도 없는 상황. 직원들이 윤 대통령의 발걸음을 막느라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연쇄이동 논란 속 외교안보특보직 신설

윤석열 정부의 초대 외교안보특보 자리는 지난달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장관에, 신원식 국방장관을 국가안보실장에 앉히는 연쇄 인사 과정에서 신설됐다. 국가안보실 사령탑 자리를 내어주게 된 장호진 전 실장이 맡게 된 새 직함이다. 7개월 만에 돌연 교체된 국가안보실장 인사의 배경을 놓고 경질설, 권력다툼설 등이 난무했다. 윤 대통령이 특보 사무실을 직접 챙기는 것을 보니 후속 조치에 신경이 쓰이는 인사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나토(NATO) 정상회의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해외 정세를 보고 군인 출신 국가안보실장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게 인사 발표 당시 대통령실의 설명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두 개의 전쟁이 동시에 돌아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도 이제 외교보다는 안보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위협 등에 대비해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은 군이 할 일이다. 중동과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국가안보 사령탑이 군인 출신으로 교체돼야 했는지 의문이다. 국방부 인사들이 ‘즉·강·끝(즉시, 강하게, 끝까지)’의 응징을 외칠 때 다른 한쪽에서 적대국 혹은 비우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고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는 게 국가안보실이 해야 할 일 아닌가. 한 발 더 나아가 전쟁 종식 이후 러시아 등과의 관계 재설정까지, 풀어내야 할 외교 방정식은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까다롭다.

불과 60여 일밖에 남지 않은 미국 대선 또한 초박빙 구도 속에 그 결과를 가늠하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재선될 경우 제기될 이슈는 주한미군 감축 같은 군사 문제만이 아니다. 북-미 협상 재개, 미중 관세전쟁,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 등 한국이 대응해야 할 경제안보 분야의 난제가 쓰나미처럼 들이닥칠 것이다.

‘리베로’로 해외를 뛰면서 이런 현안을 풀어낼 것이라는 장 특보의 역할은 막상 애매하다. 원전 세일즈 같은 특별 임무를 맡게 된다지만 특보만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미션이 무엇인지 정확지 않다. 경제안보나 통상 관련 업무라면 산업통상자원부, 한미일 협력은 외교부 장차관들이 언제라도 출장길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업무 중복이나 관할권 충돌의 문제가 불거지지 말란 법이 없다.

윤 대통령은 기존과는 다른 상근 외교안보특보직을 처음 만드는 취지로 “우리도 헨리 키신저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했다고 한다. 헨리 키신저가 밀사로 중국을 오가며 미중 데탕트 시대를 열었을 때는 그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재직하던 때였다는 것을 알고 한 언급인지 모르겠다. 키신저의 성과는 충분한 권한과 국가적 지원, 이를 보장받을 직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6년 넘게 백악관에서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한 최장수 국가안보보좌관이다.

‘리베로’ 역할 한계와 업무중복 우려

교체 사실을 직전까지도 몰랐던 장 특보는 예정됐던 업무 일정들을 갑작스럽게 조정해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인사 배경이 석연치 않으니 이번 연쇄 인사의 출발점으로 보이는 김용현 국방장관 후보자 임명을 놓고 탄핵 대비용이니 계엄령 준비니 하는 야당의 공세만 거세져 간다. 대통령실이 “외교와 안보의 두 마리 토끼를 쫓겠다”고 의미를 실은 국가안보실과 외교안보특보실의 역량을 결국 동시에 흔들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해진다.

#윤석열 대통령#국가안보실장 인사#외교안보특보직#장호진#헨리 키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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