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황도수]특별감찰관 추천 손놓은 직무유기 국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5일 23시 12분


황도수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변호사
황도수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변호사

국정은 대통령 혼자 운영할 수 없다. 협업이다. 실제로 100만 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대통령을 보좌, 보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각자의 속내는 다르다. 공직의 꿀만 빠는 자, 대통령 권력을 등에 업고 권세를 부리려는 자들도 있다. 오죽하면, 동양의 군주론 한비자는 자기 자식을 삶아서 임금 밥상에 올리는 간신들 이야기를 여러 번 언급했을까. 이승만과 이기붕, 박정희와 차지철, 박근혜와 최순실 등 대통령의 길 앞에 검은 휘장을 드리워 눈을 가린 자들은 수두룩하다.


특감, 대통령 가족 리스크 사전 예방 역할

최고 권력자는 충신과 간신을 가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자신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권세와 영달을 누리고자 입안의 혀처럼 구는 자들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대통령이 간신을 골라내는 걸 특별히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특별감찰관이다.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 대통령비서실의 수석비서관 이상의 공무원의 비리 행위를 감찰하는 게 임무다.

그러나 대통령의 측근을 감찰한다는 면에서 거북스럽고 껄끄럽기가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부담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2015년 첫 특별감찰관 이석수가 당시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 등을 고발한 뒤,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1년 반 만에 사직한 걸 보면 대통령에게나 본인에게나 적잖은 부담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연유로 그 후 문재인 정권 5년은 물론 현재까지 특별감찰관이 임명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특감의 일은 대통령에게 부담을 얹어주는 게 아니라,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이다. 측근의 비리를 알게 모르게 눈감으면, 그 결과는 부메랑이 되어 대통령의 비리로 씌워지고 궁극에는 국정 마비를 초래한다. 특감은 그런 위험성을 사전에 감찰해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고 처리함으로써 둑이 터지는 것을 미리 방지한다. 이처럼 특감의 역할은 일이 터진 뒤 수사 등으로 대통령의 국정을 멈춰 세우는 경찰,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그것과는 다르다.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브리핑에서 ‘국회가 추천하면 특별감찰관을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기왕 다잡은 마음이니 후보자 추천 요청 서면을 보내는 적극성도 보일 필요가 있다. 사실은 특감 임명에 대통령이 후보자 추천을 요청하는 건 법적으로 필요한 절차가 아니다. 국회 자체가 스스로 추천하는 게 법이다. 게다가 법조문에는 특감이 결원된 때에는 결원된 날부터 30일 이내에 후임자를 임명하여야 한다고 쓰여 있으므로, 국회는 신속하게 후보자를 추천할 의무가 있다. 국회의 추천서가 대통령에게 전달되면 3일 이내에 대통령은 그중 한 명을 특별감찰관으로 지명해야 하고, 국회의 인사청문을 거쳐 바로 임명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현재 국회의원 전원은 특감 추천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상태다. 엄밀히는 법 위반 중이고, 따라서 국민에 대한 의무를 저버린 상태다. 이런 위법이 지속되는 속내는 혹시 대통령 측근의 비리가 터지기를 노리며, 그것을 대통령의 국정 실패의 빌미로 삼아 수사로 확장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尹 “추천받으면 임명”… 여야, 조속 추천을

불행하게도, 정치라 하면 ‘여야의 권력 쟁취 싸움’이라는 그릇된 생각에 많은 사람이 갇혀 있다. 상대방의 비리를 캐고 수사를 의뢰하여 흠집을 찾아내기 무섭게 상대를 무너뜨려서 권력을 빼앗는 걸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건 정치가 아니라, 붕당 다툼, 패거리 싸움일 뿐이다. 정치는 정책 경쟁의 선순환이어야 한다. 5000만 국민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어떤 국정 운영이 바람직한가를 놓고 국민 앞에서 다투는 경쟁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코앞에서 전개되는 이 순간에 악순환 패거리 싸움이 웬말인가. 대통령은 내 가족, 내 측근이 아니라, 5000만 국민이라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아야 한다. 그 북극성을 향한 소신의 무소뿔에 특별감찰관이란 나침반을 붙여줄 일이다.
#특별감찰관#추천#직무유기#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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