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한국 기업들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미 공화당과 민주당 어느 쪽이 승리하더라도 투자 당시 미국 정부가 했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지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 과정에서 양당 모두 미국 우선주의와 포퓰리즘의 색채를 강화하면서 해외 기업에 대한 보조금이 줄어드는 등 한국 기업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 기업들은 2021년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래 칩스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해 왔다. 국내 4대 그룹이 투자한 금액만 104조200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지연되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IRA 폐기를 공언하는 등 정치적 리스크가 커지면서 투자를 보류, 연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올해 하반기 가동 목표였던 삼성전자의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은 2026년 이후로 양산 시점이 늦춰졌다.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에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의 가동도 불투명해졌다.
무엇보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기업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가 불발 위기에 놓인 것은 선거 때문에 경제 문제가 정치화된 대표적 사례다. 트럼프 후보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모두 자국 경제논리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표심을 앞세워 인수 불가를 외치고 있다. 미국의 최우방국인 일본마저도 뒤로 밀리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미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기반한 기존 투자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상황이다. IRA 및 전기차 의무화 정책 폐기 등을 내세운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 미국 정부가 약속한 세액공제 등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해리스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도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이 이어질 것으로 단언하기 어렵다. 최근 해리스 후보는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기존의 친환경 정책에서 거리를 뒀다.
미 대선에 따른 투자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미국에 진출한 기업들은 민주·공화 양당을 대상으로 가용 채널을 총동원하는 등 자체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범정부 차원에서 경제 안보 관련 액션플랜을 정비하는 등 미리 준비하고 있다. 한국도 정부와 산업계가 밀접하게 공조해 업종별, 기업별로 맞춤형 대응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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