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리모델링, 고칠 것과 놔둘 것의 조화[2030세상/배윤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8일 22시 54분


신축 아파트는 소비자들의 선호나 삶의 방식 변화에 따라 구조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많은 가구를 동시에 효율적으로 짓기 위해 아무래도 비슷한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도배에 사용하는 벽지 역시 건설사에서 가장 무난하고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무채색의 벽지를 선택하기 때문에 모든 집이 동일하다. 늘 비슷한 구조의 집을 같은 벽지로 도배하던 나는 5년 넘게 일해 온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을 떠나 현재는 고객들의 의뢰를 개별적으로 받아 다양한 집을 도배하고 있다. 이사를 하며 도배만 새로 하는 집도 있고, 때로는 기존의 집을 전부 뜯어고치는 리모델링 현장에서 도배를 하기도 한다.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나 리모델링 현장에서나 도배는 다른 공정들을 통해 만들어진 구조 위에 벽지를 붙이는 ‘마감 공정’에 해당되기 때문에 작업 내용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 처음부터 새로 집을 짓는 것보다 기존의 집을 변화시키는 리모델링이 더 어렵고 복잡해 보인다. 기존에 있던 벽을 없애 방과 방을 하나로 합치거나 새롭게 벽을 세워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천장과 바닥재를 전부 제거한 뒤 조명이나 열선을 재배치하기도 하고 아예 전혀 다른 공간으로 재창조하기도 한다. 간혹 기존 집에 철거나 변형이 불가능한 요소가 있는 경우에는 새롭게 디자인하는 공간과 잘 어우러지도록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완성된 집은 원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아주 오래되고 낡은 집이라도 리모델링을 하고 나면 신축 아파트 못지않은 혹은 그 이상으로 깨끗하고 예쁜 집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각의 공정들은 따로 움직이지만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해야 완성도 높은 집이 만들어질 수 있다.

집의 뼈대는 한번 세우면 헐기 전까지 바꿀 수 없으므로 새집은 기초를 잘 다져 견고하게 짓는 것이 중요한 반면, 리모델링을 할 때에는 바꾸고자 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간의 분리나 통합, 특정 공간의 강조, 개성이 담긴 자재나 색감 추구 등 리모델링을 하고자 한 처음 목적을 놓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남아 있는 기존의 뼈대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의 삶도 리모델링하듯 새롭게 바꾸어야 하는 때가 온다. 학생에서 성인이 되거나 직업을 바꾸거나 결혼을 하는 등 인생의 큰 변화를 마주하는 순간이 그런 때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되면 단순히 업무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 생활리듬, 인간관계 등이 송두리째 바뀌기도 한다. 이때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불필요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새롭게 디자인하고 계획하는 삶에 잘 어우러지도록 활용해야 한다. 또 결혼을 하면 단순히 함께 사는 사람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새로운 규칙을 만들거나 기존의 좋지 않은 습관을 버려야만 할 때도 많다. 상대방의 가족 등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서로 적응하고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맞추어 나갈 필요가 있다.

비록 내 안에 바꿀 수 없는 부족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나의 일부다. 기초공사 위에 끊임없이 리모델링을 해나가는 듯한 우리의 삶,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
#삶#리모델링#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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