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당선 후 2년 반, 사실상 반환점
민주화 이후 대통령 중 최악 지지율
‘개혁, 법안-숫자 던지면 끝’
간절함 없는 태도론 반전 꿈 못 꿔
5년 단임제인 한국 대통령의 ‘하산길’은 험하고 가파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봉우리가 높은 만큼 레임덕의 골짜기는 더 깊고, 추락은 더 아득하다.
“영광은 짧았고 고뇌는 길었다.” 표현은 달랐을지언정, 권력을 내려놓는 순간 이렇게 탄식한 이가 비단 김영삼 전 대통령(YS) 한 명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지 2년 반이 되는 날이다. 윤 대통령이 공식 취임한 것은 2022년 5월 10일이지만, 현실적으로 당선인에게 실리는 권력과 관심의 무게를 생각하면 윤 대통령의 임기는 사실상 당선과 함께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로써 반환점을 도는 셈이다.
유감스럽게도 윤 대통령의 중간 성적은 낙제점에 가깝다. 한국갤럽의 ‘역대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 따르면, 지난주 조사를 포함한 ‘집권 3년차 1분기 평균’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24%에 그쳤다. 부정 평가는 3배 가까운 67%에 이른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당선된 8명의 대통령 중 최악이다. 윤 대통령을 빼고 긍정 평가 비율이 28%로 가장 낮은 노태우 전 대통령도 부정 평가는 40%에 불과했다. 부정 평가 비율이 높은 축에 속하는 박근혜, 노무현 전 대통령도 각각 56%와 55%로 윤 대통령보다는 10%포인트 이상 낮았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에게 ‘블록버스터급’ 반전의 기회가 찾아올까. 전례를 보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역대 대통령의 경우 굵직굵직한 성과는 대부분 ‘힘이 센’ 임기 초반에 달성했다. 금융실명제 실시, 하나회 해체, 공직자 재산공개제 도입 등 YS의 개혁은 당선 후 1년 이내에 단행한 조치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국제통화기금(IMF) 조기 탈출’은 임기 시작에 앞서 당선인 시절부터 주도권을 잡고 제때 추진했기에 가능했다. 이런 YS와 DJ도 반환점을 돌기가 무섭게 레임덕에 접어들었고 ‘아들·측근 비리’의 늪에서 허우적대다가 불행한 퇴임을 맞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을 돌 무렵이던 2010년 6월 여당인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었는데도,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던 ‘세종시 수정안’이 당시 박근혜 의원과의 불협화음으로 국회에서 부결되는 ‘쓴맛’을 봤다. 권력의 내리막길에서는 여당의 다수 의석도 안전판이 되지 못하는 법이다. 하물며 역대급으로 낮은 지지율에, 108석 소수 의석으로 180석이 넘는 거야(巨野)까지 상대해야 하는 윤 대통령의 하산길은 어떻겠는가. 한 발만 삐끗하면 ‘천 길 낭떠러지’다.
하지만 윤 대통령에게 이런 현실에 대한 자각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에서 연금 의료 교육 노동 등 4대 개혁과 ‘저출생 위기 극복’을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짐과 각오 자체는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우호적인 민심과 여의도 지형에서도,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후반기에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지난(至難)한 개혁 과제를 이뤄낼 정도로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느냐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서 4대 개혁 등에 대해 국회의 협조를 당부한 것을 보면, 입법 뒷받침 없이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나흘 뒤 열린 22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 개원식 첫 불참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우면서까지 국회를 외면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을 향해 언어폭력과 피켓 시위가 예상되는 상황”을 이유로 들었는데, 이런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가 걸린 4대 개혁을 제 궤도에 올리는 것보다 중요한가.
윤 대통령은 앞서 국정브리핑에서 “의대 증원이 마무리됐다”는 말도 했다. 의료 현장의 위기가 응급실을 넘어 중환자실로까지 번지고 있고, 의대 강의실이 6개월 넘게 텅텅 비어 있는 현실이다. 의대 증원은,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둘째 치고, 최소한 파행을 겪고 있는 의료 현장이 의정 갈등 이전의 정상을 회복하고 대학들이 늘어난 정원을 제대로 교육하는 것을 확인했을 때 비로소 마무리되는 것이다. 지금의 윤 대통령을 보고 있으면 ‘개혁은 법안이나 숫자를 던지면 끝’이라는 식의 인식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이래서는 의료개혁도, 연금개혁도, 교육개혁도, 노동개혁도 단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지금 이대로라면 윤 대통령이 퇴임 무렵 ‘긴 고뇌’와 함께 언급할 ‘짧은 영광’이 존재할지 의문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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