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51년 전인 1973년 외국인 가사관리사(헬퍼) 제도를 도입했다. 가정에 입주해 보통 주 6일 근무하는 이들에겐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아 월 100만 원 안팎이면 고용할 수 있다. 저렴한 비용 덕분에 맞벌이 부부들의 이용률이 높다고 한다.
그렇다고 홍콩의 맞벌이 부부들이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선호한다는 것은 아니다. 동아일보가 최근 홍콩 현지에서 만난 켈빈 우 씨(35)는 외국인 헬퍼를 고용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로펌에 다니는 아내가 출산 후 육아를 위해 회사에 재택근무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건강이 좋지 않은 부모님께 신세를 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우 씨 부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지 대신 돌봐줄 사람은 아니었다. 돌봄 서비스 이용 가격이 아무리 낮다 해도 가족도 아닌 낯선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홍콩의 이런 사례를 보면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가 오히려 자녀 양육의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고 장시간 근로를 정당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렴한 비용에 돌봄을 외주화할 수 있다면 회사는 직원들의 육아 참여를 장려할 이유가 없어지는 게 아닐까. 굳이 재택근무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등의 유연근무를 허용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실제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는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명확했다. 홍콩에선 1990년대 중산층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고용이 10년 새 3배로 증가했다. 그 결과 5세 미만 자녀를 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15%포인트 이상 늘었다. 하지만 2012년 1.28명이었던 홍콩의 합계출산율은 2020년 0.88명으로 1명 밑으로 떨어진 뒤 지난해 역대 최저인 0.75명까지 추락했다. 합계출산율 세계 꼴찌인 한국(0.72명)과 큰 차이가 없다.
홍콩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를 일찌감치 도입한 싱가포르(0.97명)와 대만(0.87명) 등도 지난해 역대 가장 낮은 합계출산율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한국은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것 같다.
인구 소멸의 위기를 함께 맞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이 있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의 말처럼 영감(inspiration)이 아닌 땀(perspiration)으로 경제 성장을 이룩해 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전히 장시간 근로가 미덕으로 여겨지고, 또한 회사 내 지위와 승진과도 연결된다.
한국도 불필요하게 너무 오래 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노동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연간 1901시간으로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칠레 다음으로 길었다. 같은 기간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49.4달러로 1위인 아일랜드(155.5달러)의 32.8% 수준에 불과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자녀를 맡기고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가. 저출산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과 비용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본질적인 지향점을 분명하게 설정해야 한다. 서구 선진국들처럼 근무 효율을 높이고 자녀에게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사회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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