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슬램덩크에 빠졌던 때[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9일 23시 09분


김정은(왼쪽)과 이야기를 나누는 미국 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먼. 그는 김정은의 초청으로 북한을 다섯 번 방문했다.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왼쪽)과 이야기를 나누는 미국 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먼. 그는 김정은의 초청으로 북한을 다섯 번 방문했다. 노동신문 뉴스1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7일. 주택들 사이를 스치듯 빠져나온 일본 도쿄 인근 에노시마 전철의 좁은 협궤 열차 앞에 태평양의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승객들이 바다에 눈이 팔린 사이 열차는 천천히 가라쿠마고코마에역에 멈춰 섰다. 다양한 인종의 젊은이들이 열차에서 우르르 내렸다.

무리에 섞여 동승자가 내리는 바람에 나도 따라 내렸다. 젊은이 무리는 역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 있는 철도 건널목 앞에 몰려가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상황을 전혀 몰랐던 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동승자가 “일본 만화 슬램덩크의 가장 유명한 배경지”라고 말했다. ‘슬램덩크’나 ‘강백호’란 이름은 들은 바 있지만 자세한 내용을 몰랐다. 그래서 휴대전화를 꺼내 검색을 하다가 여러 번 헛웃음이 저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그동안 이해가 안 됐던 퍼즐들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북한 사람들을 괴롭혔던 원흉이 바로 너였구나.”

일본에서 최근 50년 동안 발행된 만화 가운데 1위,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 1위를 차지했던 화력한 경력의 슬램덩크는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연재됐다. 한국에서도 1992∼1996년 연재돼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한국 내 만화 판매 부수만 무려 1450만 부에 달했고, 1994년 발매된 비디오도 큰 인기를 누렸다.

동승자는 “한국의 30∼50대는 슬램덩크 세대라고 할 수 있다”며 “만화가 연재됐던 1990년대 초중반 농구공이 없는 집이 없었다”고 귀띔했다.

그랬다. 바로 그 시기였다. 1996년경 김정일의 지시가 하달됐다. “농구는 키가 크는 운동이니 전국적으로 장려하시오.” 이후 체육시간이면 북한 학교에선 농구만 시켰다.

내가 다녔던 김일성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전에 90분 강의가 3개 있었는데, 중간수업이 체육이면 그날은 혀를 빼물어야 했다. 당시 우리 학급 교실은 김일성대 2호 청사 22층이었다. 층고가 높아 아파트로 치면 40층 높이에 해당하는 고층이었다.

늘 정전이라 엘리베이터 이용은 꿈도 꿀 수 없던 시절이었다. 오전 8시 첫 수업을 듣기 위해 교실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다. 이후 체육수업이면 1층까지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90분 내내 뛰어다니며 농구공과 씨름을 한 뒤 다시 22층까지 올라가 수업 하나를 더 들었다.

이어 점심을 먹기 위해 내려왔다가 오후 정치학습에 참가하려면 또다시 한참을 헐떡이며 계단을 올라야 했다.

당시는 숱한 사람들이 굶어죽던 때였다. 대학에서도 밥을 세 숟가락 정도만 주었다. 배고파 걷기도 힘든 학생들에게 농구는 최악의 고문이었다. “키 크는 운동이면 키 작은 너나 할 것이지 왜 온 나라를 갑자기 들볶냐”는 원망이 치솟았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고난의 행군이 정점으로 치닫던 1998년엔 ‘가족롱구선수단’이란 영화까지 나와 사람들의 염장을 질렀다.

느닷없던 농구 바람의 원인이 김정일의 두 철부지 아들들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에 따르면 김정은이 농구에 빠진 것은 12, 13세 무렵. 한국에서 슬램덩크 열풍이 불던 시기와 일치한다. 김정은은 형 김정철과 함께 매일 초대소 직원이나 군인들과 농구를 했다. 잘 때도 농구공을 안고 잤다. 심지어 모친 고용희의 만류에도 식사가 끝나자마자 농구장으로 뛰어나가기 일쑤였다.

스위스 유학 시절에도 김정은은 공부는 내팽개치고 농구에 푹 빠졌다. 그의 방은 미국 농구팀 시카고 불스의 기념품들로 가득 찼다. 김정은이 권력을 잡자마자 데니스 로드먼을 다섯 번이나 북한으로 초대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가 슬램덩크를 만화로 봤는지 애니메이션으로 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한국 젊은이들이 농구 열풍에 휩싸였을 때 북한에선 김정일의 두 어린 아들만 농구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김정일은 그게 기특했던지 전국에 농구 열풍을 일으키라고 지시했다. 인민이 굶어 죽어 나갔지만 안중에도 없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김정은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 각종 악법을 쏟아내며 외부 문물을 접한 10대 청소년들을 마구 감옥에 잡아넣고 있다. 외부 미디어의 강력한 영향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에 대한 공포도 누구보다 크지 않을까 싶다.

어느덧 김정은도 40대에 접어들었다. 그의 딸 주애는 올해 11세로, 이제 막 사춘기 초입에 들어설 나이다. 김정은의 맹목적인 딸 사랑과 사춘기 딸의 변덕이 결합해 인민을 또 다른 방식으로 대를 이어 괴롭히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김정은#슬램덩크#농구 바람#농구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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