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 교육 여건과 전공의 수련 체계 개선을 위해 내년부터 2030년까지 5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의대 강의실, 실험·실습실을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하고, 국립대 교수를 3년간 1000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국립대 병원마다 의대생 실습을 위한 임상 교육 훈련센터를 건립하고 해부용 시신도 공유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 하지만 의대 증원 과속이 초래할 교육 현장의 혼란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당장 내년부터 의대 신입생은 4500명으로 늘어나고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는 의대 1학년생 3000명을 합치면 약 7500명이 한꺼번에 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순조롭게 예산 확보가 되더라도 정부 계획에 따르면 신축 시설은 빨라도 2028년이 돼야 사용할 수 있다. 국립대 의대 교수도 내년엔 330명만 충원된다. 의료계는 기존 임상 및 기금 교수가 정년을 보장받는 겸임 교수로 이동할 뿐 실제 신규 교수 충원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의대 교육 여건을 따지지 않은 채 의대 정원부터 덜컥 늘리고 이를 수습하려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대통령실은 6일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에 호응하면서 “의료계가 합리적 방안을 제시한다면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2000명 증원을 전제로 시설 신축이나 교수 확충에 막대한 투자를 하겠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러니 정부에 대한 불신이 누적된 의료계는 여야의정 협의체서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겠냐는 의구심을 갖는다.
7개월간 의료 공백 사태는 정부가 2월 의대 증원 2000명이라는 숫자를 돌발적으로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그간 의정 간 협의 과정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숫자였고 의대 교육 부실을 불러올 것이 명백했지만 석 달 뒤 정부는 의대 증원분 배정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였다. 이제서야 발표한 의대 교육 투자 방안은 그대로 집행해도, 집행하지 않아도 어떻게 하든 뒤탈이 나게 생겼다. 한 번 잘못된 정책 방향을 바로잡지 못하니 후속 정책들도 오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공의 이탈 병원에 군의관과 공보의를 끌어다 돌려막기하고, 추석 응급 대란이 우려되자 진찰료, 조제료 등 건강보험 수가를 최고 3.5배 한시적으로 인상하는 등 그야말로 땜질 처방에만 분주하다. 의대 2000명 증원에서 파생된 정책 오류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