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착취 추심’이나 폭행·협박 등이 연루된 악질적 불법 대부계약을 원천적으로 무효화해 이자뿐 아니라 원금도 갚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법안을 정부와 국민의힘이 추진한다. 더불어민주당도 불법 사채 근절을 위한 법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어 정기국회에서 대부업법이 여야 합의로 개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와 여당은 어제 당정협의를 열어 법정 최고금리 연 20%를 위반한 미등록 대부업자의 처벌 수위를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3000만 원 이하’에서 ‘징역 5년 이하 또는 벌금 2억 원 이하’로 높이기로 했다. 금융 소비자의 오인을 막기 위해 불법 대부업체를 부르는 명칭도 ‘미등록 대부업’에서 ‘불법 사금융업’으로 바꿀 방침이다. 특히 대부 기간 연장을 조건으로 성 착취 영상을 요구하는 등 범죄 행위가 있는 경우 계약 자체를 무효로 보고 범죄 수익을 박탈할 수 있도록 법을 고치기로 했다.
불법 사채의 막대한 폐해를 고려할 때 당정의 대응은 늦은 감이 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의 기획보도에 따르면 40대 일반주부가 아이 학원비로 빌린 40만 원이 6주 만에 15배로 불어나고, “평생 네 딸을 괴롭히겠다”는 협박을 사채업자에게서 받을 정도로 불법 사채는 우리 주변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정식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려다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이 소개한 불법 사채조직의 함정에 빠진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채무자에게 수천 % 고리를 물린 사채조직이 적발돼도 20% 법정금리를 넘는 부분만 범죄 수익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원금과 이자의 환수, 피해자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불법 사채 계약을 무효로 보고 원금까지 회수하는 일본과 다른 점이다. 이번에 정부 여당이 원천 무효를 추진하는 계약은 범죄와 관련된 반사회적 계약만이 대상이다. 민주당은 법정이자의 2배가 넘는 대부계약의 원금까지 무효화하는 법안 등을 놓고 내부 협의 중이다.
금융 약자의 피해를 막자는 큰 방향에서 일치된 만큼 여야는 서둘러 의견을 조율하고 법을 개정해야 한다. 다만 제도 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능력도, 신용도 없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법만 고친다고 불법 사금융이 근절되진 않는다. 저소득층을 위한 정부의 긴급자금 지원 체계를 확충하는 한편 당국의 지속적 감독과 감시, 엄격한 처벌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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