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하다 못해 망국론까지 언급될 정도로 최악인 근년의 저출산율을 말할 때 격세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한국에서 연중 가장 많은 신생아가 태어난 시기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로 보는 게 정설이다. 이른바 베이비부머 시기였던 1959년부터 폭발적인 출산율과 인구 증가 때문에 산아제한 캠페인까지 있었는데 1971년까지 물경 13년 동안 한 해 평균 100만 명 이상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그런데 또 그 시기가 한국의 근해에서 명태가 가장 많이 잡히던 시기이기도 하다. 1970년대는 연평균 수만 t씩 잡혀서 전국 어느 재래시장엘 가도 명태와 동태가 넘쳐났다. 산촌의 오일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연히 값도 저렴해 국민 생선으로 불릴 정도로 명태는 가정집의 밥상에 단골로 오르는 식재료였고, 한국인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해산물 1위 자리를 지금도 놓치지 않고 있다.
이 얘기는 뭘까. 이제 50대 이상이 된 이들의 삶에서 명태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유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이콘으로 등재됐다는 것이다. 생태탕이나 동태탕은 그래서 중년 이상 한국인에겐 무조건적이고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 음식이다. 거기에 저마다의 체험과 기억이라는 양념이 가미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음식은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있기 마련인데 실제로 생태탕을 마다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3가 골목 초입에 있는 ‘마라도’는 생태탕 전문점으로 사랑받는 작은 노포다. 60대 중반의 인상이 아주 좋은 여사장님이 20년째 운영하고 있다. 10평 정도의 작은 규모로 근처 직장인과 자영업자, 동네 주민들에게 두루 사랑을 받는데, 점심시간에는 웨이팅이 기본일 정도다. 마라도라는 가게 이름이 특이해 그 기원을 물으니 20년 전 횟집이었던 것을 상호까지 그대로 물려받아 생태탕 전문점으로 바꾸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갈치구이도 이 집의 또 다른 별미인데, 주재료인 생선류는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매일 새벽 떼어온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생태 살이 아주 부드럽고 국물도 시원하다. 명란과 이리도 신선하다. 여기에 전라도 식으로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리면 생선 특유의 잡내는 죽으면서 시원한 맛은 극에 달한다.
이날은 소문난 음악 애호가이자 언론사에서 도쿄 특파원을 역임하신 김도형 선생님과 이 집을 찾았다. 김 선생님의 음악감상실 ‘딥그루브’가 같은 골목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김 선생님에게 단단히 신세를 진 일이 있어 그에 대한 답례로 식사를 모시려고 근처 맛집을 미리 선정해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김 선생님이 부러 이리로 데리고 온 것이다. 신문사에서 근년 정년퇴직을 하고 젊은 시절 듣던 음악을 들으며 멋진 인생 2막을 열고 있는 그에게도 생태는 지난 시간을 끌어올려 삶을 반추하는 필수적인 모티프였던 걸까.
지금의 한국 노장 세대를 키운 7할이 명태였다고 말하면 물론 지나친 과장일 것이다. 그러나 노장 세대는 다들 어렵지 않게 동의할 것이다. 생태탕에서 시작해 동태찌개, 코다리찜, 노가리 등을 먹으며 나이를 먹는 동안 이제는 어지간히 이우는 석양에 포근한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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