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텐들러 소장을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5, 6년쯤 됐을까? 겨울의 초입, 우연히 그가 건축사 사무실로 쓰고 있는 한옥을 가게 됐는데 집 안에 가득하던 햇살이며 다정하고 겸손한 텐들러의 태도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장신에 크고 맑은 눈을 가진 그가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물으며 건넨 것은 고구마였고 처마에는 껍질을 깐 감이 매달려 있었다. 텐들러는 한국말도 유려했다. 독일인 아버지와 파독 간호사인 어머니를 둔 덕분인데 영화 ‘미나리’에서처럼 엄마를 도우러 온 할머니가 한국어 선생님 역할을 했단다. 한옥과 한국이 좋아 서울에 둥지를 틀고, 동료와 함께 건축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그의 생이 왠지 모르게 친근했다. 이후 그가 설계한 한옥도 찾아가고 종종 연락도 하며 인연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지난주, 텐들러 소장이 서울 강북의 한 주택가에 마련한 생애 첫 집에 다녀왔다. 함께 하는 목수님이 만들어줬다는 창호를 열자마자 단박에 이 집에 반해 버렸다. 천장을 유리로 마감해 집 안 가득 볕이 넘쳤고 거실과 주방, 화장실 곳곳에는 크고 작은 식물이 가득했다. 누군가의 온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거실과 주방 사이의 한 뼘 땅에는 커다란 바나나 나무까지 있었는데 “잎사귀를 잘라줘야 할 것 같다. 저기서 더 크면 어떡하냐?” 하는 걱정에 텐들러 소장은 “잎사귀 밑으로 지나다니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 건 즐거운 불편함이지요”라며 웃었다. 집에는 유럽이나 캐나다의 집처럼 앞뜰과 뒤뜰도 있었다. 특히 주방과 연결되어 있는 뒤뜰이 좋았는데 텐들러 소장은 이곳에서 각종 채소와 허브, 무화과와 방울토마토를 키우며 요리 재료로도 적극 활용한다. 텐들러 소장은 행복해 보였다. “언젠가 온실 같은 집에서 살고 싶었거든요. 사람과 고양이와 식물이 힐링되는. 서울에서 집 장만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에요. 아파트의 3분의 1 가격에 이 집을 사서 대수선을 했는데 오르막길에 있고 주차도 안 돼 집이 계속 안 팔렸대요. 당장 계약을 하면 추가로 깎아 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저는 운전을 하지 않으니 오히려 좋은 조건이었지요. 네이버 앱을 깔고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마당 있고 공기 좋은 집에 살아보시겠어요?’ 하고 매물이 떴어요. 사진은 한 장도 없이요. 한번 가보자, 싶었고 잘 고치면 될 것 같아 결단했지요.”
주택살이도 슬기롭게 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앞뜰이 옆집 베란다와 맞닿아 있어 가림막을 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생각만큼 불편하지 않다고. “하루는 마당에 앉아 있는데 옆집 베란다 창문이 열려서 흠칫했어요. 창틀로 고양이가 올라오고요. 주인 할머니가 얼굴을 비추길래 ‘고양이가 우리 집으로 넘어오고 싶은가 봐요’ 하며 인사를 건넸어요.” 이내 다정한 기류가 흐르고 서로를 배려하는 사이가 됐다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집 안 곳곳에는 텐들러 소장이 행복을 느끼는 공간과 장치가 충실하게 담겨 있다. 고양이는 천장에 설치한 나무 캣워크를 따라 걷고 거실에 깐 돌바닥을 맨발로 밟고 있으면 어릴 적 독일 집에서의 기억이 선물처럼 떠오른다. 집 장만은 아득히 먼 꿈 같지만 중심을 잡고, 용기를 내고, 상상력을 발휘하면 마냥 안갯속인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여기, 행복한 텐들러 소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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