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에 쓴소리 김종혁 최고위원
생명 직결 의료개혁 뚝심만으론 부족… 지금 죽어도 되니 개혁 바랄 국민 없어
尹-韓, 싸워도 배에 구멍 뚫지 말라… 두 사람 갈라놓으려는 간신배들 있어
與 언제까지 이승만 박정희 얘기만…
《‘이 말을 꺼내야 하나.’
국민의힘 김종혁 최고위원은 그날 오전 3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마음속에 품은 그 말을 공개 석상에서 해야 할지 머리를 싸맸다. ‘대통령실에서 당신이 뭔데 대통령 인사권을 건드리냐고 할 수 있다. 당에서도 왜 쓸데없이 문제를 일으키냐고 말이 나올 수 있다.’ 김 최고위원은 “괴로웠다”고 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누군가는 얘기해야 한다.’
뒤척이던 그는 여권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며 걱정하는데도 아무도 문제가 있다고 얘기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국민 눈높이를 맞추겠다고, 수직적 당정관계를 바꾸겠다고 국민들과 약속하지 않았는가. 그래 놓고 아무말도 못 하면 안 된다.’》
김 최고위원은 “처음에는 ‘책임자들’이라고 하려고 했다. 하지만 막판에 고쳤다. 경질 요구 범위가 확대되면 역효과가 날까 봐 책임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응급의료 공백 우려가 확산되던 5일 아침 국민의힘 최고위원회 회의. 여권에 파장을 일으킨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경질론은 그렇게 나왔다. 김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께 모든 게 괜찮을 거라 보고하고 막말과 실언으로 국민을 실망하게 한 당사자는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친한(친한동훈)계인 김 최고위원에게 발언 전 한동훈 대표와 상의했느냐고 물었다. “그럼 한 대표가 얼마나 부담스럽겠나. 제가 허락하고 말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대표가 최고위원으로 지명한 그는 30년 경력 언론인 출신이다. 2021년 최재형 전 감사원장 대선 경선 캠프에 참여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2022년 정진석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비대위원을 지냈다. 올해 4월 총선 때 경기 고양병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당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조직부총장으로 임명했다. 그전까지는 인연이 없었다.
“그전까지 얼굴 본 적도 없던 한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기에 정치 초보인 제가 어떻게 조직부총장을 하겠느냐고 했어요. 그랬더니 한 대표가 ‘저도 정치 초보인데요. 같이 해보시죠’라고 하더군요.”
대통령실과 여당에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해온 김 최고위원을 1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만났다. 그는 “내 발언이 외부에 여권 내 갈등으로 보이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라면서도 “내 생각을 있는 대로 양심껏 말하겠다”고 했다.
● “지금은 전시(戰時)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의료개혁 관철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1981년 미국 항공관제사 노조의 대규모 파업 때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1만 명 이상을 해고했다. 1984년 영국 탄광 노조 파업 때 마거릿 대처 당시 총리는 1년간 파업에 맞섰다. 유럽의 병자로 전락하게 만든 영국병을 치유하는 계기가 됐다. 정치 지도자는 당장의 이해관계보다 뚝심 있게 밀어붙여야 할 상황이 있다.”
그는 이 대목에서 “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의료개혁을 반대하는 건 결코 아니다. 대통령은 전쟁이 일어나면 국민에게 목숨을 바쳐 달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자리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가 아니다. 의료개혁을 화물연대 파업처럼 처리할 수는 없다.”
―검찰 수사하듯 해결할 수는 없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의료개혁은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다. 대통령은 의료인 양성의 효과가 10∼15년 뒤 나온다고 했다. 의료 공백이 악화일로를 거듭해 응급실 대란이 현실화한다면 ‘난 죽어도 좋으니 10년 뒤 개혁이 성공하길 바란다’고 말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뚝심으로만 밀어붙이기엔 민감한 문제다. 국민 생명이 달린 문제에 정부 대응은 세심함과 세련됨이 많이 부족했다.”
―통일된 의견으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의료계도 문제 아닌가.
“의사 단체들의 이해관계가 다 다르다. 이럴 때는 가져올 수 없는 걸 가져오라고 요구하기보다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라도 불만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는 방안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지금 정부 대응은 관료적 발상, 책임 전가처럼 보인다.”
―의사 단체들이 지나치게 이해집단 모습을 보이는 것 아닌가.
“개혁은 필요하지만 특정 집단을 정책적 필요 때문에 이기적 집단으로 몰아서만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토착왜구니 부동산 투기꾼이니 반개혁세력이니 틀딱이니 하며 국민을 갈라놓은 더불어민주당 정권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나.”
● “여당 최고위원에게 화낸 尹”
한 대표가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유예안을 정부에 제안한 뒤인 지난달 26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 회의. 기자들이 다 보는 공개 회의 중간에 의사인 인요한 최고위원이 전화를 받았다. 윤 대통령에게서 온 전화였고 인 최고위원에게 유예안 등에 대해 화를 냈다는 건 여권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김 최고위원은 이에 대해 “내가 부인할 수도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그런 스타일이 직언을 못 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아닐까.
“이런 모습이 (참모나 여권에) 잘못된 사인을 줄 수 있다. 악의가 없더라도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대통령이 불통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다만 그는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문제를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한 대통령실 발표는 “대통령이 처음으로 뜻을 굽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두 가지를 터닝포인트로 봤다.
“하나는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연찬회였습니다. 친윤(친윤석열) 의원들까지 조규홍 복지부 장관을 질타했어요. 정부가 혹을 떼러 왔다가 오히려 붙이고 갔죠. 집권 여당에서 친한 친윤 할 것 없이 불만이 많다는 걸 용산이 확인한 겁니다. 두 번째는 그날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응급실에 가보라. 아무 문제 없다’는 취지의 얘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현장과 동떨어져 있는 것 아니냐, 대통령에게 저런 보고를 하는 사람이 누군가라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 “尹, 예전 알던 동훈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복권 반대에 이어 윤-한 갈등이 또 터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당원들이 1만 명 넘게 아우성치는데 당 대표가 얘기하는 건 당연하다. 윤 대통령도 ‘이제 내가 예전에 알던 동훈이가 아니고 당 대표다. 저 친구가 당을 대변해 목소리를 내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야 한다. 복권 결정이 나온 다음엔 한 대표가 그 문제를 당에서 더 거론하지 말라고 했다. 반대했지만 대통령 권한으로 결정한 사안은 ‘오케이’ 그렇게 간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집권 반환점을 돈다.
“윤 대통령에게 세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하나는 한 대표와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한 대표가 대통령의 오랜 후배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이 녀석이 말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 비대위원장까지는 대통령의 뜻이었지만 당 대표는 대통령이 임명한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과 당 대표의 공적 관계가 돼야지 검찰 선후배의 사적 관계가 되면 안 된다.”
그는 두 번째 제언은 인사 문제라고 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하지만 찾아보면 괜찮은 사람이 많다. 그런데 꼭 논란이 되는 인물을 써야 하나. 쓸 사람이 저런 사람밖에 없느냐라는 인식이 계속되는 건 대통령에게 좋지 않다.”
―세 번째 제언은 뭔가.
“국민과 더 소통하라는 것이다. 기자회견을 지금보다 더 자주 하는 것도 좋다. 기자들이 보기 싫고 껄끄럽더라도 몸에 좋은 쓴 약과 같다. 불편하지만 자꾸 만나고 회견하면 반드시 도움이 된다.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으로서 드리는 고언이다.”
● “韓, 채 상병 특검법 딜레마는 분명”
―국민의힘도 집권 여당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는 비판이 많다.
“1990년대 말 기자로서 신한국당을 출입했다. 30년 뒤 당에 다시 왔더니 DNA가 바뀐 게 없더라. 과거는 영남 당이어도 호남을 제외한 전국을 아울렀지만 지금은 영남 자민련으로 쪼그라들었다. 언제까지 ‘건국 이승만’ ‘산업화 박정희’만 얘기하면서 갈 수는 없지 않나. 우리 당원들은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는데 당 지도부는 하나도 안 바뀌었다. 세대 교체, 시대 교체가 되지 않으면 이 당이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는 그래서 한 대표에게 전당대회에 나오라고 권했다고 했다.
―한 대표의 최근 지지율이 빠지고 있다.
“당정관계가 삐걱거리고 경제 회복은 안 되는 데 대한 실망이 분명히 있다. 그건 인정해야 한다. 다만 한 대표가 의료공백 사태의 돌파구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용기를 봐야 한다.”
―한 대표에게 포용력을 요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과거처럼 ‘형님 동생’ 하며 ‘우리가 남이가’ 이런 걸 포용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과거 정치 문법과 언어로 보면 ‘저런 싸가지가 다 있나. 형님이 부탁하면 들어줘야지 말이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대표를 움직이는 판단 기준은 사람이나 감정이 아니라 논리다.” ―한 대표도 바꿔야 할 점이 있을 것이다.
“한 대표는 판단이 진짜 빠르다. 속도전에 장기가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처럼 그렇게 휙휙 (머리가) 돌아가지는 않는다. 한 대표 이야기를 바로 이해하지는 못한다. 빠른 결정으로 치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정책은 묵히고 천천히 가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이 한 대표에게 딜레마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맞는 해법이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결과에 상관없이 추진하겠다는 한마디 때문에 야당 공격의 빌미를 제공해 본인이 굉장히 힘들어졌다. 딜레마에 처한 상황은 분명하다.”
―윤-한 관계가 집권 후반기 여권 향방을 결정할 것이다.
“윤 대통령이 성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권 재창출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같은 배를 탔다. 아무리 바보라도 서로 싸우다가 화난다고 밑바닥에 구멍을 뚫지 않는다. 그러면 망망대해에서 둘 다 죽는다.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는 두 사람 주변의 사람들을 나는 간신배라 부른다.”
김종혁 국민의힘 최고위원
△ 1962년 인천 강화 출생 △ 2012년 중앙일보 편집국장 △ 2018년 JTBC 미디어텍 보도제작부문 대표(상무) △ 2021년 최재형 대선캠프 언론미디어 정책총괄본부장 △ 2022년 국민의힘 비대위원 △ 2024년 8월∼현재 국민의힘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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