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매체가 어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무기급 핵물질 생산시설 시찰 소식을 전하며 원심분리기 설비가 빼곡히 늘어선 우라늄 농축시설의 내부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이곳은 보기만 해도 힘이 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2010년 미국 핵물리학자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영변 핵단지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준 적은 있지만 그 시설을 대놓고 노출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이 은밀하게 운영하던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한 것은 미국 대선을 50여 일 앞두고 핵무기용 고농축우라늄(HEU) 대량생산 능력을 과시하려는 대미 무력시위로 풀이된다. 그간 ‘핵병기의 기하급수적 증대’를 외쳐 온 김정은이다. 잘 정비된 공장 내부에 원심분리기 수천 개가 늘어선 모습을 통해 대미 위협이 말뿐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나아가 김정은은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른 신형 원심분리기 도입 사업”까지 언급했다. 북핵을 방치할수록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으름장이다.
그런 협박에 담긴 대미 메시지는 복합적이다. 향후 비핵화나 핵 폐기는 기대하지 말라고 쐐기를 박는 한편 은근히 협상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우라늄 농축은 플루토늄 재처리보다 훨씬 은밀하게 핵물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 딜’로 끝난 것도 영변 외에 숨겨진 시설의 폐기를 놓고 맞섰기 때문이다. 이번에 우라늄 농축시설을 노출한 것은 그 존재를 토대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나아가 핵동결을 전제로 군비통제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북한은 협박과 미끼 두 가지를 동시에 던지며 미국 대선판을 흔들고 싶어 한다. 핵능력 과시는 당장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실패를 부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원사격 성격이 짙다. 다만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역시 북핵 해법의 상당 부분을 공백으로 남겨 둔 터라 향후 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도 다분하다. 이런 상투적 수법에 미국이 쉽게 농락당할 리는 없겠지만 우리로선 면밀히 경계해야 한다. 갈수록 수위를 높여갈 도발 대응에다 미 대선 이후 정책 조율까지 대비해야 할 과제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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