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연루 의혹이 제기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항소심에서 ‘전주(錢主)’ 손모 씨가 방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초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과 주가조작을 공모한 공동정범으로 기소된 손 씨는 1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검찰은 공소장을 변경해 방조 혐의를 추가했고, 항소심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손 씨는 75억 원 상당의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매했고, 시세조종의 ‘주포’와 거래 시점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손 씨가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시세조종을 알면서도 이를 용이하게 해줬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김 여사도 손 씨와 마찬가지로 이번 주가조작의 주요 전주 가운데 한 명이다. 1심 판결 이후 ‘전주 손 씨가 무죄 판결을 받은 만큼 김 여사도 기소 대상이 안 된다’고 했던 대통령실의 논리가 설득력을 잃게 된 것이다.
관건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사실을 알았는지 여부다. 김 여사의 계좌 3개가 주가조작에 동원됐고, 김 여사 계좌로 거래된 이 회사 주식이 40억 원 상당에 이른다. 증권사 직원이 주식 거래 내역과 금액을 김 여사에게 전화로 알려주는 내용이 담긴 녹취록도 법원에 제출됐다. 김 여사가 “그분한테 전화 들어왔죠?”라고 언급한 부분도 있다. 김 여사가 계좌를 완전히 위임한 게 아니라 거래 사실을 어느 정도 알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또 손 씨가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로 1억여 원의 손해를 본 반면 김 여사는 모친 최은순 씨와 합치면 23억 원대의 차익을 얻었다는 게 검찰의 분석이다. 시세조종을 주도한 투자자문사의 컴퓨터에선 김 여사 계좌의 인출액과 잔액 등이 정리된 ‘김건희 파일’이 발견됐다. 항소심 판결문에는 김 여사 이름이 87차례나 등장한다. “김 여사는 매수를 유도당하거나 계좌가 활용당했다”는 대통령실 주장과 달리 김 여사가 단순한 전주 이상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나올 만한 정황들이다.
김 여사가 이 사건으로 고발된 건 2020년 4월이었고, 손 씨 등은 2021년 말 기소됐다. 김 여사 기소 여부도 진작에 결정됐어야 했지만, 검찰은 김 여사 대면조사를 차일피일 미루다 올해 7월에야 조사가 이뤄졌다. 결국 이원석 검찰총장도 이 사건을 매듭짓지 않고 퇴임했다. 그새 다른 전주인 손 씨에 대해서는 항소심까지 끝났다. 자의적이고 불공정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4년 5개월간 김 여사 처분을 놓고 ‘폭탄 돌리기’를 한 역대 검찰 수뇌부의 무책임이 기막힐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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