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구름 성을 눌러 성이 무너질 듯했지만, 아군의 갑옷은 햇빛 아래 금비늘처럼 번뜩였지. 나팔소리 하늘 가득 넘쳐나는 가을빛 속, 요새의 붉은 핏자국은 밤 되자 검붉게 엉겼었지. 반쯤 올린 붉은 깃발 역수(易水)에 닿았을 땐, 된서리에 북이 얼어 소리조차 나지 않았지. 황금대 만들어 인재를 모았던 황은(皇恩)에 보답하고자, 옥룡검 빼어 들고 황제 위해 목숨을 바치리라.
악조건 속에서 격전을 치르며 황은에 보답하겠다는 영웅의 비장한 기개를 담은 노래. 암운처럼 닥친 적의 공세로 성은 함락 직전이었지만 아군이 갑옷을 번뜩이며 방어에 나서자 전세는 달라진다. 진군의 나팔소리가 가을 하늘에 울려 퍼지자 전투는 더 치열해지고, 병사들의 선혈이 요새를 물들인다. 연짓빛 선혈이 검붉게 변해 대지에 뒤엉키는, 그야말로 악전고투의 전장. 차가운 된서리에 북소리마저 얼어붙었지만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영웅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른다.
시는 열여덟 젊은 시인이 당시 고관이던 문호 한유(韓愈)에게 자신의 시재를 알리기 위해 올린 알현시(謁見詩)다. 시인이 상상력을 동원해 젊은 포부를 한번 발현해 본 것이겠는데, 시를 읽은 한유는 옷매무시를 다듬고 시인을 집 안으로 불러들일 정도로 공감했다고 한다. 기발한 구상과 웅혼(雄渾)한 필체에 담긴 비장미를 감지한 듯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