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삼복더위를 경험했다. 아무리 때 이른 추석이라고 해도 이건 정상이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다들 눈치챘다. 사람이 잘못을 저질러서 벌을 받는다는 생각, 지구가 화가 났다는 생각에 두렵다. 지구만 화가 났을까. 사람들의 마음 안에도 화가 가득하다. 사람의 바깥과 내면 모두 고열에 시달리는 시대인 셈이다.
바람이 뜨거운 탓에 우리는 시원한 비를 떠올리게 된다. 당황스럽게 쏟아지는 비 말고, 우리를 혼내듯 왔다가는 비 말고, 아주 아름다운 비라면 더욱 좋겠다. 그래서 이준관 시인의 ‘비’를 소개한다. 비는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지니까 아프다고, 비가 덜 아프도록 풀이 받아주는 거라고 시인은 말한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해석을 시를 통해 배우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다. 풀 위에 내리는 비가 가장 행복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 맞다. 그것을 우리가, 우리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막아버렸다.
뜨거운 날씨에도 나가 노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땀방울을 보면 미안하기 짝이 없다. 풀이 적은 세상을 살게 해서 미안하다. 풀 같은 어른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 이제라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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