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 아이에게 화낸 나를 용서하세요[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22일 22시 57분


〈211〉지나치게 반성하는 부모에게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아이는 하루 종일 징글징글하게 말을 듣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지쳐 버린 엄마는 아이에게 무섭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몇 번이고 좋은 말로 가르쳐 줘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아이에게 무섭게 화를 내며 자녀교육서에서 하지 말라는 말들을 쏟아내고 말았다. 울다 지쳐 잠든 아이를 보니, 엄마는 너무 미안해졌다.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정도밖에 안 될까.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그 엄마가 나를 찾아왔다. 이런 날이 하루도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에 절반이 넘는다고 울면서 고백했다. 나는 그 엄마에게 “매일 잠들기 전, 하루 종일 ‘나’를 힘들게 한 아이를 용서하세요. 그리고 그 아이를 잘 다뤄 주지 못한 ‘나’를 용서하세요”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우리가 매일 밤 자기 전, 하루 일을 돌아보며 자신을 반성하기보다 용서했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라고 물을 것도 같다. 그런데 원래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은 없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은 있지만 못난 사람은 없다. 그래서 더 나은 사람도 없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 괴롭히지는 말았으면 한다. 일부 반성을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너무 자신을 다그치지 말자. 우리는 자신에게는 필요치 않은, 그저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들 때문에 자신을 지나치게 혹독하게 대할 때가 너무 많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나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필요하다. ‘나’를 알아야 ‘나’를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자신을 계속해서 알아가는 과정이다. 자신에 대해서 많이 알면 알수록 자신을 더 잘 다루게 된다. 자신을 잘 다루게 되면 마음이 쉽게 요동치지 않는다. 자신에게 실망할 일이 조금은 덜 생긴다.

앞서 말한 소리 지르는 엄마도 그렇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를 무조건 지키려고 하는 것보다 ‘아, 내가 이럴 때 이런 마음으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는구나’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는 행동을 줄일 수 있다.

그렇게 ‘나’를 알려면 마음의 안정감을 찾아야 한다. 마음의 안정감을 찾으려면 ‘나’를 미워하고 혼내서는 안 된다. ‘나’를 인정하고 용서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심한 말을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런 일을 당하면 한동안은 그 사람을 용서하기가 힘들다. 그때 분노하는 마음을 가졌던 당신을 당신이 용서해야 한다. 누군가 무리한 요구를 했다. 뭐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잔뜩 위축되어 있던 당신을 용서해야 한다. 어떤 일에 쉽게 좌절하고 포기했던 당신을 용서해야 한다. 목숨 바쳐 사랑하는 자식이지만 순간 미워서 ‘으이구!’ 했던 당신을 용서해야 한다. 갑자기 끼어드는 차 때문에 감정이 격해졌던 당신을 용서해야 한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오늘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 오늘은 그냥 나를 용서하자’라고 했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을 진심으로 용서하려고 노력했으면 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마음의 안정감을 찾는 길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생각보다 큰 고통을 주는 사소한 일들과 의외의 사람들이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감정이 날카로워져서 오히려 자기 자신을 할퀴게 될 때가 많다. 용서는 그럴 때 스스로 정서적 안정감을 찾고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이다.

잘못을 해놓고 “다 괜찮아, 다 괜찮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수많은 나약함과 치졸함, 별것 아닌 것에 화냈던 마음, 남을 미워했던 마음 등을 돌아보면서 그 마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감을 갖도록 자신을 진정시키라는 것이다. 그런 마음들 때문에 우리 마음속 집의 기둥이 흔들리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이다.

내일을 잘 살아가려면 오늘이 끝나기 전 ‘나’를 용서해야 한다. ‘내’ 마음의 불씨를 끄는 것이 용서이다. 오늘 생겨난 불씨는 오늘 그냥 꺼 버렸으면 한다. 그 작은 불씨를 끄지 않으면, 그 불씨는 어느 틈에 불길이 되어 우리 마음의 집을 다 태워 버릴지도 모른다. 우리 마음의 집을 태우고,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까지 재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반성#부모#아이#오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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