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간부 여러 명이 민간인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면서 3급 군사비밀인 암구호(暗口號)를 유출한 정황이 드러나 군경 합동 수사를 받고 있다. 전북경찰청과 국군방첩사령부는 최근 20, 30대 군 간부들이 사채업자에게 암구호를 누설한 사실을 확인하고 군사기밀보호법(군기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올 초 가상화폐 거래를 위해 돈을 빌리면서 암구호를 누설한 한 장교의 군기법 위반 사건 이후 수사가 확대됐다고 한다.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기 위해 정해 놓은 문답인 암구호가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릴 때 담보로 잡히는 부동산이나 차량 대신 이용됐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암구호는 초병이 문어(問語)를 말하면 상대가 답어(答語)를 외치는 피아 식별 암호로서 북한군이나 간첩에게 넘어갈 경우 군부대 침입에 곧바로 사용될 수 있는 중요 비밀이다. 그간 병사들이 카카오톡 단체방에 암구호를 공유하거나 외부의 장난 전화에 암구호가 유출되는 사건이 일어나 줄줄이 징계 등 처벌을 받은 일도 있었다.
그처럼 보안성이 강조되는 암구호가 일부 군 간부에겐 돈을 빌리기 위해 군인 신분을 확인하고 담보 대신 제공하는 신용정보가 됐다. 최초에 어느 쪽이 먼저 암구호 공유를 제안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지만 군인으로선 자신들의 지위까지 위태로울 수 있는 치명적 정보를 내놓으며 신용을 얻고 사채업자로서도 제때 채무를 상환하지 않으면 협박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에 대한 이해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불법 사채업자들이 채무자로부터 지인 연락처 수백 개를 담보로 잡아 온라인에 연락처를 뿌리겠다고 협박한 사례와도 비슷하다.
훈련소 때부터 배우는 군 보안의 기본 중 기본인 암구호가 군인들의 빚 담보로 전락한 현실은 군의 기강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확인시켜 준다.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이 북한 관련 첩보 업무에 종사하는 블랙요원의 신분 등 개인정보를 중국인에게 넘긴 사실이 드러나 우리 군의 대북 첩보망이 궤멸 위기에 처했다는 경고음이 나온 게 불과 얼마 전 일이다. 잇단 비밀유출 보안 사고로 드러난 군의 총체적 기강 해이에 상응하는 지휘부의 고강도 쇄신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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