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에서 부탄 양궁 대표팀을 이끈 박영숙 감독(64)은 한국 양궁 초창기 ‘명궁’ 중 한 명이다. 박 감독은 1979년 독일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진호 한국체육대 교수(63) 등과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했다.
1987년 은퇴한 뒤 그는 국내 초중고교 양궁팀을 가르치며 지도자의 길을 걷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국제심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 그는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영국 런던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하기도 했다. 노력 끝에 그는 2006년 아시아 대륙 심판 시험을 통과했고, 2007년에는 마침내 국제심판 자격증을 받았다.
늦게 배운 영어가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2009년 그는 싱가포르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2010년에는 이탈리아 여자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정말 좋은 대우를 받았다. 이후엔 돈을 받지 않더라도 어려운 나라를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탈리아는 그에게 재계약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뿌리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아프리카 최빈국 중 하나인 말라위 대표팀을 맡기로 한 것이다.
말라위에선 제대로 된 장비가 없어 과녁도 달걀판과 폐지를 섞어 만들었다. 1 더하기 1도 모르던 아이들에게는 점수 계산을 위해 산수를 가르쳤다. 그에게 양궁을 배운 알레네오 데이비드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양궁 개인전에 출전했다. 말라위 역사상 첫 올림픽 양궁 선수였다.
박 감독의 다음 행선지는 ‘행복한 나라’ 부탄이었다. 처음엔 그도 주저했다. 돈 때문이 아니라 고산병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가능한 한 비행기를 타지 말고 고산지대를 피하라’고 조언했다.
그래도 그는 견학을 겸해 부탄을 찾았다가 한 산봉우리 정상에서 바라본 절경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2021년 도쿄 올림픽 때 그가 가르친 여자 선수가 부탄 양궁 역사상 처음으로 자력 출전권을 따냈다. 올해 파리 올림픽에는 남자 선수 한 명과 함께 출전했다. 두 명 모두 메달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출전 자체가 의미 있었다.
몇 해 전 대장 일부를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았던 그이지만 요즘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는 인사를 받곤 한다. 그는 ‘소식(小食)’과 ‘편안한 마음’을 원인으로 꼽았다. 박 감독은 “부탄은 먹을 게 그리 풍부한 편이 아니다. 덕분에 소식을 한다. 야채 위주로 간단히 먹고, 단백질은 달걀로 섭취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행정적인 일 처리 등이 한국에 비하면 무척 느리지만 사람들이 좋고 환경이 좋다. 그래서인지 정신적으로 무척 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감독직 제의를 받고 있다. 그중에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유럽 국가도 있다. 하지만 일단 부탄에서 감독직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앞으로도 선진국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나라에서 양궁을 가르칠 생각이다. 박 감독은 “남은 인생을 좀 더 알차게 보내며 뜻깊은 일을 하고 싶다”며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때가 오면 온라인 등을 통해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양궁 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