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부터 물을 자주 마시는 병이 있고, 또 등 위에 부종(浮腫)을 앓는 병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 4월 또 임질(淋疾)을 얻어 이미 열하루가 넘었는데도 몸이 노곤하다. 이 병을 앓은 사람들은 모두 ‘비록 나았다가도 다시 발작한다’고 했다.” 조선의 성군이라 불리는 세종대왕 재위 20년 4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사람들’의 말처럼 세종의 임질은 그 다음 해(재위 21년) 정말 재발했다.
“7월 제릉(齊陵)에 제사하는데 비바람이 치고 길이 좁아서 가마를 타지 못하고 말을 타고 갔다 왔는데 이튿날 임질이 조금 도졌다. 지난 봄 강무(講武)할 때도 전질이 다시 도질까 염려돼 비록 말을 타기는 했지만 내 손으로 고삐를 잡지 않아 몸을 쉬도록 했다. 하지만 이튿날 임질이 도로 도졌다.”
실록에 나타난 세종의 ‘임질’ 기록을 보고 깜짝 놀랐겠지만 그가 말한 임질은 현대의학의 감염성 성병과는 다른 질병이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성병인 임질 환자는 많았다. 동의보감은 임질을 “심신의 기운이 하초에 몰려 오줌길이 꽉 막혀 까무러치거나 찔끔찔끔 그치지 않는 증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종이 앓은 임질은 감염성 성병이 아니라 신장과 방광이 허약해 빈뇨 증상이 있는 등 소변 보기가 불편한 전립샘 질환이었다. 태종 6년 문신 권근의 기록은 조선시대 임질이 어떤 질환이었는지를 알게 한다. “신의 병이 위독해 임질이 발작하는 것이 일정치 아니하니 밥 먹는 사이에도, 또한 밤이 다하도록 오줌을 누러 가야 해서 잠시도 평안할 때가 없습니다.”
빈뇨는 스태미나가 약하다는 증거라는 속설은 과연 진실일까.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은 음양의 이치 중 양(陽)의 측면과 관계가 있다. 항온동물인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인체의 온도를 36.5도로 유지해야 한다. 방광에 고이는 소변은 혈관 밖의 물이다. 물은 온도가 낮다. 소변을 배출하는 것은 몸의 노폐물을 처리하는 것 외에도 인체의 온도를 유지하려는 목적도 있다.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 즉 한의학에서 말하는 양기(陽氣)가 약해진다는 점이다. 소변은 온도가 낮은 물(陰氣)이므로 양기가 부족한 사람은 소변을 자주 배출해야 방광의 온도(陽氣)를 제대로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노화로 소변을 짜내는 힘은 약해져 있으니 결국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짜내는 힘이 약하면 나가던 물이 다시 밀려 들어와 잔뇨감이 생기고 빈뇨 증상이 생긴다.
한의학은 바로 소변을 데우는 힘과 짜내는 힘, 그리고 발기력을 합쳐서 통칭 ‘양기’라고 한다.
즉, 빈뇨나 오줌발이 남성의 양기, 정력과 연관이 깊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빈뇨가 양기와 관련이 깊다고 본 한의학적 기록은 많다. 조선 임금 중 빈뇨 증상에 시달렸던 경종(1688∼1724)은 실제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자식이 없었다. ‘승정원일기’에는 숙종 34년 2월 10일 세자였던 경종의 빈뇨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육미지황환’을 처방한 기록이 보인다.
오줌발과 관련해 예부터 가장 많이 거론되는 한약재는 복분자(覆盆子)다. 한자 자체가 ‘(오줌발이) 요강을 뒤집는 열매’라는 뜻이다. 한의학에선 익기 전의 약간 푸른 복분자 열매를 말린 것만 약재로 쓴다. 막 익으려는 압축된 힘만이 약이 된다고 본 것이다. 반면 익은 열매는 맛은 있어도 약이 되긴 힘들다. 양기를 북돋우길 바란다면 약재도 중요하지만 우선 운동으로 하체 근육부터 강화해야 한다. 미사일이 멀리 가려면 발사대가 튼튼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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