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 해녀촌이 해묵은 갈등 해소한 비결[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19〉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24일 23시 00분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은 삶을 거칠게 만든다. 협력해야 할 상대를 경쟁 대상으로 여기는 피로한 삶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욕심과 욕심의 충돌은 자정 능력을 잃었고 갈등은 일상화됐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어느날 예능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다. 백종원이 바닷가를 찾아서 음식물 먹는 장면이 TV 화면에 비쳤는데 낯익은 공간이었다. 부산 영도구 중리 해녀촌에서 성게알김밥을 먹다가 멈칫거리기를 반복했다. 소리가 들리는 뒤편으로 신경 쓰는 표정이 역력했다. 출연자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손님 쟁탈전으로 해녀 할머니들 사이에 목청이 높아진 상황이 그려졌다.

해녀촌은 80세 전후의 노인들이 갯바위에 천막을 치고 해산물을 판매한다. 매일 물질을 하는데 제주도를 떠나서 영도에 정착해 50여 년을 반복해 온 삶이다. 그런데 손님이 해녀촌으로 들어설 때마다 다툼이 생긴다. 과열된 경쟁을 막기 위해 순서대로 돌아가며 손님을 받는 원칙이 있음에도 언쟁은 일상이 되었다.

여타 지역 해녀도 물질 후 해산물을 직접 판매하는 곳이 있지만 유독 이곳만 왜 다른 모습을 보이는지 의아했다. 의문을 풀기 위해 수시로 해녀촌을 방문해 관찰했다. 여타 지역 해녀들은 물질 후 휴식을 취할 여유가 있으나, 중리 해녀는 물질 후 곧바로 해산물을 판매했다. 매일 전쟁터나 다름없는 고된 삶을 이어온 것이다. 바다와 싸우고, 물질이 끝난 후에는 옆에 있는 해녀와 경쟁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더군다나 갯바위 위에서 겨울에는 바닷바람을 맞고, 여름에는 뙤약볕에서 일했다. 열악한 환경에 노출돼 더욱 각박해졌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녀들 간에 편이 갈리어 대치하고 있었다. 원래 청학팀과 봉래팀은 함께 물질을 했으나, 갈등이 생기는 바람에 해변 양쪽으로 갈라섰다. 양측은 대립하며 오랫동안 왕래하지 않았고, 해묵은 갈등은 해소될 기미가 없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어촌계와 구청에서 파악하고 있었다. 해녀문화전시관을 건립하면서 건물 1층에 해녀가 채취한 해산물을 판매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해녀들 간의 복잡한 갈등을 해소하지 않고, 입점하면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음을 어촌계와 구청 관계자는 알고 있었다.

운영 규칙을 정하고, 50년 동안 쉼 없이 물질하고 판매하던 관행을 바꿔 휴식을 충분히 취할 수 있는 방향으로 체계를 만들었다. 영도해녀문화전시관 개관(2019년 11월 6일) 후 불과 몇 주 지나지 않아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 간 앙금이 완화됐다. 개관 후 1개월이 지나면서 다른 팀 구성원들과 섞여서 대화를 나누는 화기애애한 장면이 자주 목격됐다. 자연스럽게 양측의 물질하는 바다 경계도 없어졌다. 팀 내 구성원 간의 경쟁이 아닌 협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변경함으로써 개인 간의 불화도 사라졌다. 개인 간 갈등과 집단 간의 대치가 해소됨은 물론이고, 노동 강도가 줄어들어 심리적인 안정을 찾으면서 삶의 질이 개선됐다. 공간의 효율적인 활용과 질서 잡힌 운영체계의 힘을 보여준 사례다.

이번 추석 연휴에 중리 해녀촌을 찾았다. 실내외에는 빈 좌석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인파 속에서 가만히 지켜보다 뒤돌아섰다. 해녀 할머니들의 얼굴과 몸짓에 여유가 넘치고 있었다.
#영도 해녀촌#해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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