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선생에게 배우는 공직자 청렴[기고/이철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24일 22시 51분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철우 경북도지사

조선 5대 명재상으로 꼽히는 서애 류성룡(1542∼1607)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 전란을 극복하기 위해 애를 썼다. 막대한 군수물자가 움직이는 전쟁에서 그는 부정한 돈을 받지 않았고 이순신이라는 인재를 파격적으로 추천해 나라를 구했다.

그는 1598년 삭탈관직돼 고향 안동으로 돌아와 하회마을 옛집에 살았다. 호우에 집이 침수됐는데 전쟁에 피폐한 백성들이 고쳐야 하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15km 떨어진 학가산 서미마을 단칸 초가집으로 들어갔다. 서애는 거기서 ‘징비록’을 쓰다 1607년에 눈을 감았다.

징비록에는 그의 공치사가 아니라 임란의 원인과 쓰라린 과정을 담아 후세에 교훈을 남겼다.

서애가 세상을 뜨자 자손들은 집에 남은 재산이 없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그는 단칸 집이 초라하다는 자식들에게 “사람이 이욕에 빠져 염치를 잃어버리는 것은 모두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 곳에서든지 살 수 있다”며 청렴하게 사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당시의 대학자 우복 정경세는 서애의 막내아들 류진에게 준 시에 이렇게 적었다. “하회의 옛집에는 다만 유묵과 집 한 채(河上傳家只墨莊). 어린 자손들은 나물과 찌꺼기 밥에 끼니도 어렵네(兒孫疏礪不充腸). 십 년의 정승 자리 어떻게 지냈기에(如何將相三千日). 성도의 뽕나무 800주(제갈공명의 재산)도 없단 말인가(倂欠成都八百桑)” 서애가 죽자 서울의 상인들이 4일간 가게의 문을 모두 닫고 통곡하며 청렴한 재상의 죽음을 슬퍼했다.

서애의 인생은 2차대전 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한국 일본 중국만이 새롭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밀을 알려준다. 사회적 조화와 도덕적 질서를 강조한 유교 문화의 가치 체계에서 공직자에게 청렴은 기본 소양이었다. 과거시험과 같은 엄격한 공직 선발 과정은 지식과 능력뿐만 아니라 도덕성을 중시했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이라는 3사의 감독과 감시 체계 역시 공직자의 부패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몇 해 전 필자가 경북도지사에 부임해 보니, 청렴도가 전국 최하위권이었다. 당장 도지사실 문에 ‘변해야 산다’는 글씨를 써 붙이고 도청 앞마당에 공룡 뼈 조형물을 세웠다. 청렴은 공직자의 기본임을 강조하고 도청이 변하지 않으면 공룡처럼 멸종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설파했다.

현대의 청렴은 개인의 수양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개방적이고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리더가 솔선수범해서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 필자는 정장 일색이던 공무원 복장부터 자율화했고 복무도 개인 사정에 맞춰 편안히 하도록 했다. 틈나면 직원들과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믿을 수 있고 열려 있는 편안한 환경에서 청렴한 문화가 뿌리내린다.

공직자는 일생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친다. 사사로움 없이 공정하게 행하면 어디서든 가슴 펴고 당당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직업이다. 외부와 활발하게 소통하면서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도 공직이 청렴하다는 신뢰 위에서 만들어진다. 경북도는 2020년 청렴도가 17개 시도 중 최상위로 뛰어올랐고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북이 최근 각종 특구에 선정되고 많은 투자를 유치하는 비결을 묻는 분들에게 필자는 “공직자들은 가슴에 ‘청렴’ 두 글자를 새기고 뛰고 있다”고 답한다.
#공직자#청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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