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말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공천 여부나 선거 후 정국 전망을 물어보려 여당 지도부나 관계자들을 접촉하면 으레 돌아오는 대답이었다.
당시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후보를 내는 것에 부정적이던 때다. 보선 원인을 국민의힘 소속이던 김태우 전 구청장이 제공한 데다 강서구가 여당에 험지여서 공천을 하지 않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이 당내 중론이었다. 굳이 총선을 반년 앞두고 당 지도부가 이기기 힘든 선거로 중간 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에 특별사면·복권한 김 전 구청장을 외면하긴 어렵다는 분위기가 여권 핵심부에 형성됐다. 결국 당 지도부가 김 전 구청장을 후보로 공천한 뒤 일개 구청장 선거는 정부·여당을 향한 수도권 민심을 확인하는 총선 전초전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결과는 아는 그대로다. 17%포인트 차 참패는 여당의 ‘수도권 위기론’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폈다. 위태롭던 여당 지도부는 결국 해체되고, 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됐다. 구청장 선거가 여당 지휘부를 폭파시킨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선거에 의미가 부여되면 선거 규모가 문제가 아니다. 선거에 담긴 정치적 함의가 문제”라고 말했다.
곧 ‘일개’ 구청장·군수 재·보궐선거(10·16 재·보선)가 또 치러진다. 이번엔 야권을 중심으로 정치적 함의가 잔뜩 부여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텃밭인 전남의 두 지방자치단체(곡성·영광군)에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맞붙으면서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3일 “만약 결과가 조금 이상하게 나오면 민주당 지도 체제 전체가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국혁신당이 두 곳 중 한 곳이라도 가져가면 호남에서 이 대표에 대한 회의론이 생길 수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관전자 격인 국민의힘의 한 전략통 의원은 “민주당의 수도권 승리에는 호남 출향민의 지분이 크다”며 “호남 지지 기반이 흔들린다는 건 수도권도 흔들릴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대체자를 노리는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재·보선을 위해 전남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재·보선의 의미는 야당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여당 텃밭인 부산 금정구와 인천 강화군에서 조용한 승리를 노리고 있다. 조용한 승리를 노린다는 건 이들 선거가 이슈화되지 않길 바란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이는 선거 결과에 따라 온갖 의미가 부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개헌 가능 의석수를 막아줬던 부산이 뚫리면 여당의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강화군은 수도권 민심과 곧장 연결된다. 여당 핵심부는 두 선거를 이길 수 있다고 보지만 당 일각에선 최근 정부·여당의 낮은 지지도가 변수가 될까 걱정하는 기류도 없지 않다. 결과가 나쁘면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에게 어떤 식으로든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번 재·보선의 중심에 서 있는 한 대표, 이 대표, 조 대표는 모두 차기 대권 주자로 분류된다. ‘일개’ 선거가 대권 주자들의 행보를 흔드는 스노볼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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