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학교 등 국가기관에서 1317건의 성폭력·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지만 여성가족부가 관련 법에 따라 현장 점검을 한 사건은 단 1.1%(15건)였다. 이미 지난해(2102건)의 62%에 달할 정도로 성폭력·성희롱 사건이 늘어났지만 현장 점검 횟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양성평등기본법과 성폭력방지법은 국가기관에서 성폭력·성희롱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여가부에 통보하도록 하고, 이 중 여가부가 중대하다고 판단한 사건은 현장 점검을 하도록 했다.
여가부는 현장 점검 인력이 4명뿐이라 매년 1000∼2000건에 달하는 성폭력·성희롱 사건을 처리하기는 부족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3년간 인력 변동이 없는데 현장 점검 비율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여가부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며 그 기능을 못 하는 건 아닌지 묻게 된다.
여가부는 올 2월 김현숙 장관이 물러난 후 벌써 7개월째 차관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간 경기 하남과 서울 강남역 교제 살인 사건, 서울대 인하대를 비롯한 학교 딥페이크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지만 여성과 아동·청소년의 폭력 피해 예방을 담당하는 여가부는 현안 대응에 소극적이었다. 차관 대행 체제로 정부 내에서 주도권을 잡고 정책을 수립, 집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여가부 폐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정부 출범 이후 정부조직법 개정이 무산되자 여성 정책 예산을 깎고 장관을 비워 두는 등 사실상 여가부를 ‘식물 부처’로 만들었다. 이런 파행적인 국정 운영으로 인해 성폭력 피해자나 아동·청소년 같은 약자들부터 보호와 지원에서 배제당하고 있다. 대통령 공약대로 정부 조직이 개편되지 않는다고 해서 엄연한 기능과 예산을 가진 부처를 ‘개점휴업’ 상태로 두는 것은 무책임한 발상이다. 여가부의 일부 기능을 흡수한 인구전략기획부가 출범하기 전까지라도 조속히 여가부를 정상화해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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