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의 그제 회동이 김건희 여사 논란과 의정 갈등 등 핵심 현안에 대한 아무런 대화 없이 ‘밥만 먹은 만찬’으로 끝났다. 90분간 진행된 야외 만찬에서 윤 대통령은 체코 원전 수출 성과 등에 대해 사실상 혼자 얘기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한 대표는 인사말도, 건배사도 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앞서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청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대통령실과 신경전을 벌였던 한 대표는 만찬 뒤 추후 독대 자리를 잡아 달라고 재차 요청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확답을 주지 않았고, 재요청 사실이 곧바로 언론에 보도된 것을 두고 불쾌해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정 화합을 위한다던 용산 만찬은 결국 윤 대통령실과 한 대표 간 불신의 골만 더 키운 자리가 됐다. 내키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밥 먹는 모양새라도 갖추자는 이번 만찬에선 “김건희의 ‘김’자도, 의료의 ‘의’자도, 민생의 ‘민’자도 안 나왔다”는 것이 참석자의 전언이다. 꼬일 대로 꼬인 국정의 한복판에서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어렵게 만난 자리가 이렇게 끝났다니 허탈할 뿐이다.
이번 만찬은 그간 수면 아래서 끓고 있던 갈등이 본격 분출하는 기폭제가 된 양상이다. 대통령실 내에선 지지율이 떨어진 대통령과 차별화하려는 듯한 한 대표의 행보를 두고 “속 좁고 교활하다”는 비판이 나왔고, 당내 친윤계는 “대통령과의 차별화로 자기 정치만 하려 한다”고 한 대표를 직격했다. 반면 친한계 의원은 “용산이 구중궁궐에 갇혀 있으니 어느 것 하나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고, 김건희 여사 문제가 계속 터지는 것”이라고 대통령실을 정면 겨냥했다.
내전을 방불케 하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 간 갈등은 가뜩이나 민심이반으로 흔들리는 정부여당에 치명상을 안길 것이다. 추석 연휴 전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각각 20%, 28%로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국정을 책임진 여권의 두 축이 깊은 대화 없이 반목하고 불신해서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국정의 동력을 되살릴 수 없다. 국정 책임자들의 감정싸움을 용인해 줄 만한 인내심이 국민에겐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잘못하면 국민에게 맞아 죽을 수 있다”는 한 여당 참석자의 우려가 현실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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