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편한’ 도토리면 칼국수 소화 잘 되고, 가격 착하고[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26일 2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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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신수동 ‘평창버섯매운칼국수’의 도토리샤브버섯매운칼국수(위쪽)와 야채죽. 김도언 소설가 제공
서울 마포구 신수동 ‘평창버섯매운칼국수’의 도토리샤브버섯매운칼국수(위쪽)와 야채죽. 김도언 소설가 제공
언젠가 인터넷의 어떤 블로그에서 세계에서 한국 사람들만 식용으로 사용하는 재료를 꼽아놓은 걸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깻잎과 콩나물, 골뱅이, 참외 등과 함께 도토리가 들어가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도토리는 숲속에 사는 설치류들의 먹이나 돼지의 사료로만 인식될 뿐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라고는 도저히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도언 소설가
김도언 소설가
상수리나무과의 열매인 도토리 자체의 맛은 사실 쓰고 떫어서 당최 맛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몹시도 가난하게 살았던 멋 옛날, 선조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도토리를 주워다가 식재료로 가공했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서 우리가 멋쩍어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지금 도토리는 너무나도 훌륭한 맛과 풍미와 영양분을 지닌 식재료로 당당히 K푸드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포구 신수동,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부근 안쪽 골목에 위치한 ‘평창버섯매운칼국수’는 오래된 주택을 식당으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는데 마당까지 있어 도심 속 시골 식당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바로 이곳 칼국수가 도토리를 주원료로 하고 있다. 도토리를 빻아 곱게 가루를 내고 전분을 밀가루와 황금비율로 배합해 반죽을 만든 뒤 직접 면을 뽑아낸다고. 그래서 그런지 면 색깔이 진한 갈색을 띤다.

10년 넘게 영업을 하고 있다는 인상이 맑고 선한 60대 주인 내외와 찬모 두 분이 일사불란하게 일하는데 어느새 맛집으로 소문나 방송에 소개된 적도 있어 식사 시간에는 웨이팅을 각오해야 한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평창에서 채취한 각종 약재와 버섯, 그리고 해산물로 낸 육수에 도토리 면으로 삶아 내는 칼국수다. 여기에 샤브샤브 스타일을 접목해 쇠고기가 곁들여지는데 깊고 풍성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거기에 면을 다 먹고 나면 밥과 야채를 배합한 야채죽이 나와 속을 든든히 채우는 데 부족함이 없다. 막 담아서 제공되는 시원하고 아삭한 겉절이와 함께 먹는 칼국수와 야채죽이라니, 지금도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일 정도다. 그런데 이 모든 가격이 9000원.

우리말 ‘속이 편하다’는 중의적인 뜻을 갖고 있다. 직설적으로는 위장과 배 속에 물리적인 불편함이나 거북함이 없이 편하다는 뜻이 있고, 은유적으로는 마음에 걱정이나 근심, 부담이 없다는 뜻이 있다. 밀가루를 주원료로 삼는 칼국수는 가끔 속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밀에는 물에 용해되지 않는 불용성 단백질인 글루텐 성분이 있는데 이것이 체질에 따라 소화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토리에는 중금속 등 독성 물질을 배출케 하면서 복통을 진정시켜 주는 탄닌이라는 성분이 있다.

실제로 나 같은 경우 평창버섯매운칼국수의 도토리 칼국수를 먹고 나서 속이 유달리 편안한 걸 느낄 수 있었다. 도토리와 칼국수가 성분 측면에서 찰떡궁합이라는 걸 이 집주인 내외는 명민하게 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은유적인 차원에서도 속이 참 편했는데 그것은 앞서 말한 착한 가격에 대한 만족감 때문이다. 서민들 입장에서라면 칼국수 한 그릇을 참 맛있게 먹고 나서 부담스러운 가격표를 받게 되면 속이 편할 리 없다.

도토리만두, 도토리묵 무침, 도토리 버섯전 등 도토리를 이용한 사이드 메뉴와 계절 별미인 도토리 콩국수도 강추한다.
#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칼국수#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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